1897년 설립된 동화약품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제약사다. ‘활명수’의 대중화로 수많은 목숨을 살렸던 동화약품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치료제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박기환 대표이사는 신약 개발과 사업 다각화라는 중책을 안고 새로운 동화약품의 100년을 준비하고 있다.
생명 살리는 ‘활명수’…이젠 세계 살리는 코로나 치료제 개발
활명수는 ‘생명의 살리는 물’이라는 의미다. 활명수가 나왔던 1897년 당시에 급체와 토사곽란(토하고 설사해 배가 아픈 증상)으로 안타깝게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궁중 선전관이던 민병호 선생은 이런 아픔을 막기 위해 궁중 비방에 서양의학을 접목해 활명수를 개발했다. 이것이 ‘국민 소화제’라 불리는 활명수의 시초다.
민병호 선생은 아들과 함께 활명수 대중화를 위해 동화약방을 창업했다. 당시 탕약을 달여먹었던 시기라서 복용이 간편한 활명수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활명수는 많은 목숨을 살렸을 뿐 아니라 수익금이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 자금으로 활용되는 등 의미 있게 쓰였다.
동화약품은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을 위해 신약후보물질 DW2008에 대한 임상 2상 시험을 신청한 상황이다. DW2008은 원래 천식치료제로 개발 중이던 약물이다. 임상 1상에서 폐 기능 강화와 가래 배출 효과가 확인된 바 있다. 동화약품이 의뢰해 한국파스퇴르연구소가 수행한 코로나19 항바이러스 활성스크리닝에서 DW2008은 항바이러스 효과가 탁월한 것으로 조사됐다.
동화약품 측은 “한국파스퇴르연구소의 연구 결과, DW2008은 코로나19 치료제로 연구 중인 대조약물 렘데시비르의 3.8배, 클로로퀸의 1.7배, 칼레트라의 4.7배 높은 항바이러스 활성을 보였다”고 말했다.
동화약품은 DW2008을 사스 질환의 예방 또는 치료용 약학적 조성물로 특허 출원했다. 또 코로나19 치료제가 시급한 만큼 환자에게 바로 쓰일 수 있도록 ‘치료목적 사용승인’을 신청할 계획이다.
동화약품 관계자는 “치료목적 사용승인 시 2주 동안 300명에게 투약할 수 있는 분량도 이미 확보했다. 동물 약효평가를 신속히 완료한 후 임상 2상에 착수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화장품 브랜드 '활명'도 론칭…미국 선출시
활명수의 부채표는 가장 오래된 상표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다. 소화제 후발주자였던 까스명수의 급성장으로 위기를 맞았을 때 동화약품은 부채표 상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위기를 돌파했다. 1990년대 동화약품의 ‘부채표가 없는 것은 활명수가 아닙니다’라는 광고 카피로 ‘까스활명수’에 대한 이미지를 각인시킨 바 있다.
까스활명수는 국내 액상소화제 시장 점유율이 70%에 육박한다. ‘국민 소화제’로 불리는 이유다. 동화약품은 2019년 활명수류로 615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전체 매출의 20%에 달할 정도로 캐시카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동화약품은 여성과 어린이 등을 겨냥하는 다양한 활명수 라인업을 구축하며 브랜드 이미지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또 다양한 브랜드와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젊은 층 공략에도 성공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2016년 동화약품은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6’와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하며 호응을 얻었다.
동화약품은 2017년 ‘활명’이라는 화장품 브랜드를 론칭하며 사업 다각화에 나서고 있다. 활명은 활명수 성분 가운데 5가지 생약성분을 활용해 제조했다. 올인원 제품인 스킨엘릭서, 크림, 세럼, 마스크팩 등 다양한 제품군이 나와 있다.
동화약품은 미국에 먼저 활명을 출시하며 가능성을 확인했다. 이어 지난해 글로벌 화장품 편집숍 세포라와 독점 계약을 맺은 뒤 국내에 선보이고 있다.
동화약품은 브랜드 홍보를 위해 경복궁 인근에 활명의 체험형 매장인 플래그십 스토어를 설치하기도 했다. 특히 윤도준 회장의 장녀인 윤현경 더마톨로지사업부 상무가 화장품 사업을 책임지고 있어 힘이 실리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박기환 대표이사는 활명수의 오랜 역사와 노하우를 적극 활용해 브랜드 확장에 나서고 있다.
사업 다각화로 오너가 눈높이 맞출까
활명수류는 매년 2억병씩 팔리고 있다. 규모는 6억원으로 크지 않지만 수출도 이뤄지고 있다. 2019년 기준으로 후시딘류 204억원, 판콜류 303억원, 잇치류 151억원 등의 매출 규모에서 알 수 있듯이 동화약품의 일반 의약품 라인업은 탄탄하다. 하지만 전문 의약품에서는 블록버스터 제품군이 없어 성장이 더딘 편이다. 국내 제약사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지만 매출 규모는 3000억원 수준에 머물고 있다.
동화약품이 향후 200년 기업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새로운 성장 동력이 필요하다. 박 대표가 ‘소방수’ 역할을 맡을 전문경영인으로 뽑혔다. 미국 뉴욕대 MBA 학위를 받은 박 대표는 UCB코리아, 한국아스트라제네카, 한국 베링인겔하임 등 글로벌 제약기업에서 풍부한 경험을 갖춘 전문가다.
박 대표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동화약품에서 일할 기회를 얻게 되어 자랑스럽고 영광”이라며 “지난 25년간 쌓았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회사와 직원들의 본보기가 되는 올바르고 좋은 리더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동화약품 오너가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해 전문 경영인들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짐을 싸는 경우가 많았다. 박 대표는 지속성장이 가능한 동화약품을 위해 신약 개발 부문을 강화하고 있다. 이마세 연구소장, 이대희 개발 전무 등 새롭게 합류한 연구개발(R&D) 전문가들을 통해 신약 개발에 전념하고 있다. ‘내실 있는 성장’을 강조하는 박 대표는 내부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정비하며 다양한 영역의 신제품 개발, 신약 파이프라인 강화 등을 중점적으로 추진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동화약품은 활명수에 집중된 브랜드 이미지를 탈피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어내야 지속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