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태인은 올 시즌 첫 8번의 선발 등판에서 평균자책점 2.30을 기록했다. 15일까지 리그 평균자책점 5위. 이닝이 적은 건 아니다. 외국인 투수 데이비드 뷰캐넌(44⅔이닝)에 이어 팀 내 두 번째로 많은 이닝(43이닝)을 소화했다. 사실상 토종 에이스 역할을 해내는 중이다.
불펜 투수로 나와 1이닝을 던진 시즌 첫 등판을 제외하면 선발 7경기에서 42이닝을 책임졌다. 평균 6이닝이다. 지난달 21일 대구 LG전을 시작으로 사직 롯데전, 잠실 LG전까지 3경기 연속 7이닝 이상을 투구했다. 자연스럽게 퀄리티 스타트(QS·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가 쌓인다. 지난해 8번에 불과했던 QS가 올해 벌써 4번이다. 투수 세부 지표가 모두 월등하게 향상된 가운데 선발 투수의 기본인 이닝 소화 자체가 달라졌다.
원태인은 데뷔 시즌인 지난해 112이닝을 던졌다. 불펜으로 시즌을 시작해 선발로 전환했다. 신인이 100이닝을 넘겼다는 건 의미 있는 기록이다. 하지만 아쉽게 규정이닝(144이닝) 진입에 실패했다. 시즌 7이닝 투구가 딱 1번에 불과했다. 이닝당 투구수가 17.4개로 많아 긴 이닝을 끌고 가는 게 어려웠다. 올해는 15.8개로 약 2개 정도를 줄였다. 6이닝을 기준으로 하면 10개 이상의 투구수가 절약되는 셈이다. 3.13개였던 9이닝당 볼넷도 2.93개까지 낮추면서 효율적인 피칭이 가능해졌다.
원태인은 "지난해에는 변화구로 볼카운트 싸움을 하고 결정구가 없으니 승부가 길어졌다. 올해는 맞더라도 초구부터 잡고 가자는 생각이다"며 "불리한 볼카운트에서도 피하지 않고 (포수 미트) 가운데를 보고 자신 있게 들어가니까 범타도 나오고 자신감도 붙었다. 그러다 보니까 이닝도 길게 던질 수 있는 것 같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삼성은 배영수와 윤성환으로 이어지는 토종 오른손 선발 라인이 강점이었다. 그러나 배영수가 이적한 뒤 은퇴했고 윤성환은 구위가 이전만 못 하다. 올 시즌에도 기약 없이 2군에 내려가 있는 상황. 공을 들였던 정인욱은 여전히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다. 한때 선발로 전환했던 최충연은 부진 끝에 불펜으로 돌아갔고 지난해 겨울 음주운전을 하다가 적발돼 징계를 소화 중이다.
팀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원태인의 성장이 중요하다. 2020시즌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말 그대로 기대 이상. 입단 당시 '사자군단의 에이스감'이라는 평가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의 성장은 이닝이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