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FC의 상승세를 이끄는 장신 스리백 김우석·정태욱·조진우(왼쪽부터). 대구 팔공산에 빗대 ‘팔공산성’으로 불린다. [사진 대구FC]대구FC는 요즘 프로축구에서 가장 잘 나가는 팀이다. K리그1 개막 후 4경기에서 무승(3무1패)을 기록하다 최근 4경기에선 무패(3승1무) 팀으로 돌변했다.
순위가 6일 10위까지 떨어졌다가 단숨에 4위까지 치고 올라가, 선두 자리까지 넘보고 있다. 팬들은 파죽지세의 비결로 외국인 공격수 트리오 ‘세데가’ 세징야(31)·데얀(39)·에드가(33)의 득점력을 꼽는다. 그런데 ‘세데가’ 활약이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전문가는 대구 상승세의 일등공신으로 ‘팔공산성(山城)’을 꼽는다. 팔공산성은 정태욱(23)·김우석(24)·조진우(21)로 이뤄진 대구의 장신 스리백 수비라인이다. 단단한 수비력을 대구의 명산 팔공산에 빗대 붙인 별칭이다. 팔공산성은 5라운드 성남전(7일)부터 가동됐는데, 대구는 이 경기에서 시즌 첫 승을 거둔 뒤로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필드골(페널티킥 3실점·프리킥 1실점) 허용도 없다. 대표급 수비수가 포진한 전북 현대나 울산 현대만큼 화려하지 않지만, 가성비 최고다. 정태욱(왼쪽 두 번째)은 성남전에서 헤딩으로 결승골을 기록했다. [연합뉴스] 정태욱·김우석·조진우를 22일 전화 인터뷰했다. 이들은 여느 20대 초반 청년처럼 밝았다. 인터뷰 내내 웃음이 쏟아졌고 농담도 즐겼다. 경기에서 상대 공격수를 마주했을 때 보이는 냉정한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다. 정태욱은 “평소에는 지금보다 더 ‘업’된다. 일상이 즐거워야 축구도 즐겁다”고 말했다.
팔공산성이라는 별명처럼 이들의 최대 장점은 높이다. 정태욱(1m94㎝), 김우석(1m87㎝), 조진우(1m89㎝)의 평균 신장은 1m90㎝이다. 농구선수라 해도 손색없을 정도다. 웬만한 공중볼 경합에도 밀리지 않는다. 실제로 정태욱은 공중 경합(43회)이 가장 많은 수비수다. 2위 울산 불투이스(31회)보다 10회 이상 많다. 인터셉트(23회)도 1위다. 김우석(지상 경합 6위)과 조진우가 가세하면 말 그대로 ‘공중전’에서 리그 최강이다.
조진우(왼쪽 두 번째)는 몸을 사리지 않는 저돌적인 플레이가 돋보인다. [연합뉴스]셋 다 ‘수트라이커’(수비수+스트라이커, 골 넣는 수비수) 능력도 갖췄다. 세트피스 상황 때면 나란히 공격에 가담한다. 정태욱은 성남전(2-1승)에서 타점 높은 헤딩 결승골을 터뜨렸다. 팬들은 "농구의 덩크슛 장면 같았다”고 칭찬했다. 정태욱은 "수비수로서 넣는 골은, 공격수의 결정적인 골 찬스를 태클로 걷어낸 것만큼 짜릿하다. 자주 느끼고 싶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사실 팔공산성은 이달 들어 급조된 수비 조합이다. 원래 대구 스리백 수비라인을 이끌던 주장 홍정운(26)이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면서다. 그 자리에 조진우가 대신 들어갔다.
팔공산성 평균 나이는 22.6세. 일각에선 "경험이 부족하다”고 걱정했다. 다행히 정태욱이 홍정운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빈틈없이 해내며 우려를 불식시켰다. 나이에 비해 경험이 많은 덕분이다. 그는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과 2020년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챔피언십 우승 멤버다.
김우석(왼쪽)은 지상 경합에 일가견이 있다. 볼을 뺏은 후엔 장기인 패스로 공격 전개의 시발이 된다. [뉴스1]김우석은 "(정)태욱이가 흐름을 읽고 수비라인을 리딩하는 모습은 베테랑처럼 안정적”이라고 치켜세웠다. 다른 두 사람 역할 분담도 확실하다. 김우석은 빌드업 스페셜리스트다. 팀의 장기인 역습의 시발점이다. 경기당 전방 패스 24.1개(수비 8위)다.
막내 조진우는 돌격대장이다. 신인이지만 웬만해서는 겁먹지 않고, 상대 공격수를 강하게 압박한다. U-19 국가대표 출신인데, 거친 몸싸움도 겁내지 않는다. 조진우는 경기에 나서기 시작한 이번 달 기록만 따지면 수비 공중경합 부문 4위다.
정태욱은 "(조)진우가 워낙 적극적으로 해줘서 부담이 없다. 오래전부터 함께 뛴 것처럼 호흡이 좋다”고 칭찬했다. "흔히 말하는 서로 눈빛만 봐도 아는 사이냐”고 묻자, 정태욱은 "모른다. 눈빛만 보고 어떻게 아나. 그 정도는 아니다”라며 웃었다. 그러면서도 "팀워크를 완성하는 과정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강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조진우는 "아직 경험도 기술도 없다. 매 경기 사력을 다한다. 부족한 건 형들이 메워준다”고 공을 돌렸다.
조진우는 ‘어린 꼰대’로 불린다. 경기 중 다급하면 반말을 쏟아내 붙은 별명이다. 조진우는 "‘야, 정태욱 뒤를 봐’‘김우석 공격 올라가지 마’ 같은 식으로 말하는데, 형들이 이해해준다. 수비도 하고 스트레스도 풀고 일석이조”라며 웃었다. 이어 "형들이 외출할 때 좀 데려가면 좋겠다. 반말했다고 벌주는 걸 수도 있는데, 커피 살 의향도 있다”고 덧붙였다. 정태욱은 "앞으로는 챙겨주겠다. 하지만 커피 사겠다는 거 진심이냐”고 받아쳤다.
팔공산성의 올 시즌 목표는 리그 최고의 수비벽을 세우는 일이다. 셋은 "K리그의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이 되는 게 목표다. 셋이 함께하면 그 어떤 팀도 두렵지 않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