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루기 위한 도전에 한계는 없다. 나이는 더 더욱 의미 없다. 어차피 후회와 아쉬움이 공존할 인생이라면, 평생 꿈꿔왔던 일이 있다면, 한번쯤 저질러 보는 것도 애쓰며 살아 온 나에 대한, 내 인생을 위한 깜짝 선물이 될 수 있다. 배우 정진영(55)이 데뷔 30여 년만에 카메라 앞이 아닌 카메라 뒤에 섰다. 직접 쓴 시나리오로 메가폰까지 잡아 감독 데뷔 신고식을 치른다. 개봉을 앞두고 "발가벗겨진 기분"이라는 속내를 토로하면서도 "모든 과정이 행복했다"는 솔직한 고백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되, 누구에게도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컸던 시간. 영화계 선·후배들의 응원 속 세상에 내놓게 된 영화 '사라진 시간'은 용기내지 않았다면 가져 보지도 못했을, '감독 정진영'이라는 새로운 시간을 완성해준 고마운 매개체다.
※인터뷰①에서 이어집니다.
-가볍고 쉽지 않은 이야기다. "사실 내용은 단순하고 쉽다. 개인적으론 관객들이 막 웃으면서 관람하기를 바랐다. 내가 생각하는 화두 같은 것들이 다소 관념적일 수는 있다. 결국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이야기인데, 모든 사람은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들이 규정하는 나'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한다. '남들이 바라는 나에 맞춰 살고 있는건 아닌가. 그렇다면 진짜는 뭐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그걸 한 시간 반 안에 담아 재미있게, 옛날 이야기 듣는 듯이, 계속 파도를 넘어가는 구조로 만들어내고 싶었다."
-시나리오를 가장 처음 본 사람은 누구인가. "조진웅이다. 초고를 쓰자마자 보냈는데 하루만에 답이 왔다. 너무 고마웠다. '어렵지 않니?' 했더니 '뭐가 어려워요. 내 이야기인데' 하더라. 보통의 경우엔 시나리오를 주면 주연배우에게 의견을 묻고 수정을 한다. 근데 진웅이는 '딴데는 모르겠고, 내가 나온 부분은 토시도 바꾸지 말아요'라고 딱 잘라 말하더라. 출연한다는 결정도 놀라웠는데 시나리오를 믿어주니까 그렇게 감동적일 수 없었다. 어깨가 으쓱해져 그 때부터 조금씩 시나리오를 보여줬다."
-기억나는 반응이 있다면. "이준익 감독님은 직접 사무실에 찾아와 정자세로 보셨는데 '정말 좋은 시나리오야. 근데 영화로 만들어졌을 땐 분명 엇갈릴 수 있어. 그건 네가 감당해야 해'라고 하시더라. 큰 용기를 얻었다. 영화 '약속' '와일드 카드' 등을 함께 한 김유진 감독님께도 보여드렸다. 감독님은 누구보다 영화의 정통 어법을 중요시 하는 분이라 '무지하게 욕 먹겠다' 각오까지 했는데(웃음) '시나리오 좋다. 네가 이런 이야기를 썼을 줄 몰랐다'고 지지해 주셔서 너무 힘이 됐다. 이후엔 캐스팅 하는 배우 한명 한명이 모니터링 대상이었다. 모두가 믿어줬고 그 덕에 여기까지 왔다."
-캐스팅엔 쉽게 진행돼 내심 안도했을 것 같다. "내가 선배라고 해서 후배에게 '이거 해' 할 수는 없다. 근데 진웅이가 생각보다 더 빨리 결정을 내려줘서 '내가 하자고 해서 하는거 아니지?'라고 조심스레 물어보기도 했다. '미쳤습니까. 제가 그런 식의 관계가 한 두개겠습니까. 그렇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더라.(웃음) 첫 캐스팅은 당연히 중요했다. 애초부터 조진웅을 모델로 놓고 쓴 시나리오였지만 캐스팅 기대는 한 5% 정도 밖에 하지 않았다. 시나리오를 보낼 때도 엄청 망설였다. '안 주고 후회하느니 빨리 거절 당하고 넘어가자' 싶어 전달 했는데 'OK' 해줘서 고마웠다."
-조진웅의 매력을 꼽는다면. "음…. 일단 진웅이는 멋있는 인간이고, 난 소심한 사람이다. 하하. 사실 진웅이가 영화에서는 캐릭터적으로 강한 모습을 많이 보이지 않았나. 근데 난 그 안에 있는 여리여리한 감성을 알고 있다. '사라진 시간'의 주인공은 직업만 형사일 뿐 전형적인 허세와 터프함을 보이지는 않는다. 스스로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을 맞이했을 때,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연약한 인간을 그렸다. 진웅이에게서 그런 모습들과 여린 감성이 보였다.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 되, 배우의 탁월한 연기력까지 더해지면서 내가 원했던 바가 충분히 형상화 됐다. 진심으로 고맙다."
-캐릭터와 찰떡같이 어울리는 배우들이 많았다. "차수연 씨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인연이 있는 배우들이다. 캐릭터에 맞음직한 후배들에게 책을 줬고 대부분 단번에 출연 결정을 해줘 고마웠다. 시골 마을 분들은 어줍잖지만 오디션으로 뽑았다.(웃음) 그런 분들을 모시고 싶었다. 내가 영화 연출을 한다는 소문이 여기저기 나기 시작하면서 '지나가는거 하나라도 해줄게! 한 신 나와도 괜찮아!' 품앗이 해주려는 배우들이 많았다. 근데 낯선 이야기를 다루는 공간 곳곳에 유명 얼굴들이 가득 있으면 이상해질 것 같더라. 응원과 관심만 고맙게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