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A씨는 우회전하기 위해 차를 멈춰 놓고 대기하던 중 뒤에서 오던 SUV 차량이 추돌하는 사고를 당했다. 경미하지만 자동차사고가 처음이던 A씨는 보험사에 다니던 지인 B씨에게 전화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다. B씨는 가입한 자동차 보험사에 전화하고 특정 한방병원에 ‘하루라도 누워라’고 조언했다.
차 사고를 당해 경미한 부상을 입은 환자의 한방 진료비가 최근 4년 새 2배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교통사고로 다치면 정형외과에 가는 것이 통상적이지만, 요즘은 한방병원으로 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동네 한방병원에서 '자동차 사고 치료’라는 홍보 문구를 쉽게 볼 수 있다.
이에 자동차보험에서 나간 진료비 중 한방병원에 지급한 돈이 1조원에 육박하면서 일부에서는 한방병원이 과잉 진료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보험업계에서는 자동차보험 한방 진료비의 심사·평가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거세다.
차 사고 경상에는 한방병원…"방법이 없다"
최근 국회입법조사처가 내놓은 ‘자동차보험 한방진료의 현황과 개선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자동차보험 한방진료비는 9569억원으로, 2014년(2722억원)보다 3.5배 늘었다. 연평균 증가율은 29%로, 같은 기간 양방 병·의원 진료비 증가율(2%)의 15배 수준이다.
한방 진료비의 급증에는 경상 환자가 큰 영향을 끼쳤다. 뇌진탕을 비롯해 목이 삐끗했거나(경추염좌), 허리를 다쳐(요추염좌) 한방 병·의원을 찾은 환자들이다.
통상 자동차보험 경상 환자(상해급수 12∼14급) 가운데 다수를 차지하는 부류다. 이들 경상 환자의 진료비는 지난해 1조2000억원으로 2015년(6499억원)보다 1.9배 늘었다. 경상 환자 1인당 진료비도 한방 병·의원은 평균 10만246원으로 양방 병·의원(5만6615원)의 2배에 가까웠다.
경상 환자들은 왜 한방 진료를 선호할까.
여기에는 “한방 치료가 양방보다 더 적극적이다”거나 “사고 후유증을 고려할 때 한방 치료가 적절한 것 같다”는 등의 이유가 주로 거론된다. 또 자동차보험 환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려는 한방 병·의원의 홍보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A씨는 “교통사고로 한방병원에 하루 입원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며 “눈에 보이는 아픔이 아니니, 뻐근하다는 등의 이유로 한방병원에서 도수치료 등 통원치료도 쉬웠다”라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공짜 마사지 등을 마케팅 수단으로 내세워 ‘나이롱 환자’ 유치에 나서는 한방병원도 많다는 지적도 있다.
일부 한방병원이 타박상 등 경상 환자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점은 손보사들에게는 눈엣가시다. 업계는 올해도 한방진료비 증가 추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최근 휴가철이 다가오며 코로나19 사태로 집에만 있던 사회적 분위기가 해이해지자, 안정기에 접어들었던 자동차보험 손해율이 바로 치솟기 시작했다.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손해보험사 자동차보험 손해율 평균은 91.3%(가마감 기준)로 전월 대비 4.6%포인트 급증했다. 올해 들어 가장 큰 증가폭으로 90%대로 올라선 것은 5개월 만이다. 손보사들이 통상 적정 손해율로 관리하는 78~80%를 크게 넘어선 규모다.
지난 1월 93.2%에 달했던 자동차보험 손해율은 보험료 인상 영향으로 한 달 만에 89.2%로 내려앉았다.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3월에는 84.4%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확진자가 감소하면서 방역 수칙이 '생활 속 거리두기'로 전환된 4월과 5월에는 각각 88.6%, 87.9%로 상승 전환했다. 특히 일부 손보사들은 2분기 이후 손해율이 100%를 넘어서면서 고심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더욱이 휴가철이 본격 시작되는 이달부터는 자동차보험 손해율 상승폭이 더욱 가팔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자동차보험에서 한방병원 비중이 60%를 넘고 진료비가 4년 사이에 2배 가까이 증가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손보사 입장에서는 이를 깐깐히 따진다 해도 구별해 낼 방법이 사실상 없다”고 토로했다.
한방병원 ‘과잉진료’ 막을 방법은
보험업계에서는 진료비를 보험사가 전액 부담하는 자동차보험 환자의 특성을 이용해 일부 한방병원, 한의원 등에서 과잉치료를 일삼고 있다며 자동차보험 손해율 악화의 주범으로 한방 진료비를 꼽고 있다.
일부 보험사에서는 보험금 심사를 까다롭게 해 보험금 누수를 줄이는 모양새다. 그래서 관련 민원도 덩달아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1분기 손보 민원 가운데 '보험금 산정 및 지급' 에 불만을 가진 유형은 3379건으로, 전년 동기보다 506건 증가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본인 과실이 없는 차 사고일 경우 한방병원을 가서 무조건 진료를 받아야 한다는 소비자들 사이의 분위기가 만연하다”며 “사실상 교통사고 치료만 받는 것이 아니라, 생각지도 않은 한약을 지어주고 매일 병원에 와서 진료받으라 하는 것이 과잉진료가 아니냐”고 했다.
시민단체 '소비자와함께'도 과잉진료로 한방진료비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며 소비자 보호를 위해 누수 요인을 줄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달 초 소비자와함께가 실시한 '자동차보험 한방진료에 관한 소비자 인식조사'에 따르면, 환자의 75%가량이 상태에 따른 개별적 처방보다는 정해진 양을 일괄적으로 처방하는 등의 과잉 처방이 많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소비자와함께 관계자는 "환자의 상태에 따른 개별적 처방보다 정해진 양의 한약을 충분한 설명이 없이 처방해 보험료와 자원의 낭비가 일어나고 있다"며 "자동차보험으로 제공되는 한약(첩약) 초회 처방량을 환자의 경과를 지켜보고 약제처방원칙에 따라 3·5·7일 정도로 처방하며 가감하는 방향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한 보험사 연구소장은 “자동차보험 특례법에 따라 사고가 났을 때 형사처벌을 면하려면 종합보험을 들어야 해 대부분의 사람이 책임보험보다 종합보험을 드는 경우가 많다”며 “책임보험의 경우 급수에 따라 치료비 한도가 있지만, 종합보험은 치료비 한도가 없어 결국 보험사는 의사 처방에 따라 치료를 받게 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의사들이 과잉진료를 하더라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묘연하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