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처럼 생겼네 이제는 나도/ 생각도 그래야 할 텐데/ 그랬다면 이렇게/ 엉망으로 살 순 없겠지” 지난달 발매된 여성 듀오 옥상달빛의 ‘어른처럼 생겼네’ 노랫말이다. 올해로 데뷔 10주년을 맞은 이들은 큰맘 먹고 선보인 미니앨범 ‘스틸 어 차일드(Still a Child)’를 준비했지만 수록된 6곡의 면면은 소박하기 그지없다. 동아방송예술대 영상음악작곡과 동기로 만나 줄곧 함께 활동해 온 1984년생 동갑내기 두 사람에게 지난 10년은 일과 삶이 별다른 구분 없이 녹아든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매년 부지런히 신곡을 발표했지만 앨범 단위로 내는 것은 2013년 2집 ‘웨어(Where)’ 이후 7년 만이다.
최근 서울 홍대 작업실에서 만난 이들은 ‘어른’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작업한 앨범이라고 소개했다. 박세진은 “서른여섯이니 어른이 분명한데 아직 덜 컸다는 생각에 자조적인 이야기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좋아하던 마린룩도 이제는 어울리지 않아”(박세진) 동생들에게 넘겨주고, “고음으로 올라갈 때면 이마에 주름이 생겨서”(김윤주) 앞머리를 고수하게 됐지만, 그 역시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이 주된 감성이다. 더블 타이틀곡 ‘산책의 미학’ 역시 코로나19로 생긴 새로운 취미인 산책의 즐거움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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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여섯, 어른 분명한데 아직 덜 컸다”
이는 옥상달빛의 노래가 청춘을 위로하는 ‘힐링송’의 대표주자로 자리 잡게 된 비결이기도 하다. “어차피 인생은/ 굴러먹다 가는 뜬구름 같은/ 질퍽대는 땅바닥 지렁이 같은걸”(‘하드코어 인생아’)이라고 푸념하다가도 “아무도 너의 슬픔에/ 관심 없대도/ 난 늘 응원해”(‘수고했어, 오늘도’)라고 토닥여주고 “어디로 가는지 여기가 맞는지/ 어차피 우리는 모르지”(‘인턴’)만 함께 헤매고 있음을 꾸밈없이 보여준 덕분이다. 유산소 운동, 녹황색 채소도 중요하지만 “가끔은 친구들과 술자리도 치킨도 피자도 보쌈도” 괜찮다는 노랫말(‘가끔은 그대로 괜찮아’)을 듣다 보면 웃음이 피식 새어 나온다.
두 사람은 “서로 성격은 다르지만 개그 코드가 맞아서 쭉 함께할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대학 시절 같은 빌라 위아래층에 살며 잘 때 빼고는 항상 붙어있었을 만큼” 장단이 잘 맞는다고. “세진이는 제목 짓는 센스가 정말 좋아요. ‘하드코어 인생아’ ‘없는 게 메리트’ 등 영어도 한국어처럼 쓰는 게 많은데 광고 쪽으로 나가도 성공했을 것 같아요.”(김윤주) “효자곡 ‘수고했어, 오늘도’는 윤주가 쓴 거예요. 잔잔한 여운이 오래 가잖아요. 목소리 톤도 완전히 달라서 잘 어울리고. 이렇게 화음에 집착하는 팀도 없는데 서로 다른 걸 잘해서 다행이죠.”(박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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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포세대’ 주제가? 위로 필요한 시대
88만원 세대, 삼포 세대 등 암울한 청춘의 주제가가 된 것에 대한 의견도 밝혔다. 김윤주는 “미래가 불안하기도 하고 고민도 많아서 자신에게 하고 싶었던 괜찮다, 고맙다 같은 이야기를 담다 보니 그 말이 필요한 분들에게 더 잘 들린 것 같다”고 했다. 2014년 십센치의 권정열과 결혼한 김윤주는 “협업 제안도 많이 오는데 아직은 둘이 활동하는 건 부끄럽다. 시간이 많이 지나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카 보는 재미에 푹 빠진 그는 “보사노바 리듬에 맞춰 춤추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동요 앨범도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도 인디신을 대표하는 레이블로 성장했다. 올드피쉬의 소다가 발굴한 옥상달빛을 시작으로 십센치ㆍ선우정아ㆍ새소년ㆍ박문치 등 소속 뮤지션만 20~30팀에 달한다. 박세진은 “아티스트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회사다. 저 살기도 바빠서 신경 쓸 여유가 없는데 윤주는 회사와 거의 연동돼 있다”고 말했다. 김윤주는 “취미가 잔소리라 피드백을 즐기는 정도”라고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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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밤’ DJ 하면서 우리 편 생겨 행복”
이들은 2018년 가을부터 MBC 라디오 ‘푸른밤, 옥상달빛입니다’를 진행하면서 ‘공감력’이 더 상승했다고 했다. 2010년 첫 앨범 제목이 ‘옥탑라됴’일 정도로 라디오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편. “학교 다닐 때 로고송을 만드는 과제가 있었는데 ‘달빛 주파수’라고 만들었어요. 일대일로 전달되는 그 느낌이 너무 좋았는데 동경하는 자리에 앉게 된 거죠.”(김윤주) “인간관계가 그렇게 넓은 편이 아닌데 ‘우리 편’이 만들어지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사연 덕분에 인생을 배우기도 하고요.”(박세진)
그렇다면 이들이 위로가 필요할 때 찾아 듣는 곡은 무엇일까. 김윤주는 중요한 일이 생길 때면 정원영 5집을 듣는다고 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그 감정이 배가 된다”는 이유에서다. 박세진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일렉트로닉 음악을 들으며 푼다”고 했다. 음악 취향은 극과 극인 셈. 김윤주는 “요즘 유행하는 ‘부캐’처럼 일렉트로니카 듀오로 활동해볼까 하는 생각도 있다. ‘클랩스’라고 이름도 지어놨다”며 웃었다. “앞으로 10년도 그때그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솔직하게 풀어내고 싶어요. 너무 어린 척하거나 어른스럽게 굴지 않고 솔직하게.”(박세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