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에 수양대군이 있다면,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는 레이가 있다. 수양대군이자 레이인 배우 이정재가 다시 한번 등장부터 강렬한 존재감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두 남자의 쫓고 쫓기는 이야기를 그린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이정재는 무자비한 추격자 레이를 연기한다. 레이는 한번 정한 타깃은 절대 놓치지 않는 인물로, 자신의 형제가 인남(황정민)에게 암살당한 것을 알게 되고 그를 향한 무자비한 복수를 계획한다. "이유는 중요한 게 아니야. 이젠 기억도 안 나네"라는 대사처럼 그저 죽이기 위해 달리고 찌르고 쏘는 것이 본능인 남자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잔혹한 살인마 안톤 쉬거(하비에르 바르뎀)를 연상케 한다.
이정재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무엇 하나 '묻히는 캐릭터'가 없었다. 주인공이 여럿인 영화에서도 언제나 두각을 드러냈고, 시간이 흘러도 회자되는 명장면과 명대사의 주인공이었다. 기시감이 들게 하는, 리스크가 적은, 이정재 표 캐릭터를 만들기보다는 언제나 특색있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이번 영화의 레이 역시 마찬가지. 이정재는 "새로운 것, 독창적 캐릭터를 보여드리기 위해 리스크를 감수했다"며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와 레이를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레이라는 인물의 성격을 표현하기 위해, 얼음을 마구 씹어먹는 설정이 눈길을 끈다. "연출부에 요구했다. '이 신에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필요하고 빨대가 꼭 있어야 한다'고 했다. 아이스박스에 담긴 얼음을 씹어먹는 장면에서도 '덩어리 형태의 얼음을 원한다'고 했다. 눈에 안 보이는 작은 설정이지만, 그런 생활적인 설정이 들어가야 인간미라는 건 전혀 없는 맹목적 추격자를 표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화려한 타투도 화제를 모았다. "타투도 (촬영 전 스태프들의) 많은 의견이 있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어느 부위에 해야할지 이야기를 많이 했다. 제일 걱정했던 것은, 태국이 아무리 겨울이라도 그려놓은 타투가 지워지기 쉽다. 황정민 선배가 연극에서 타투를 했던 경험이 있어서 조언을 해줬다."
-'신세계' 콤비의 재회는 기대를 모으지만 한편으론 부담으로 작용한다. "호흡이 잘 맞았던 배우와 또 작업을 하고 싶은 열망은 있다. 근데 쉽지 않다. 한 작품이 나에게 오게 되고, 그 작품을 선택하는 데까지는 운명 같은 뭔가가 있다. 그 운명이 (황)정민 형과는 가깝게 있었던 것 같다. '신세계'는 정말 즐거운 현장이었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정민 형이 먼저 캐스팅된 상황에서 시나리오를 봤다. 형의 연기를 상상하면서 시나리오를 읽었더니 더 재미있었다. (황정민의 출연이) 출연 결정을 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신세계'를 했었다고 해서 이번 영화에 대한 큰 부담감을 가지지는 않았다. 항상 새로운 캐릭터를 연기해야하는 직업이다보니, '신세계'와 다른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이 있는 시나리오였다. ('신세계'와 비교에서 오는) 부담은 크지 않았다. '신세계'의 황정민, 이정재와는 많이 다르게 보여드릴 수 있을 거란 생각이 있었다."
-어떤 차별화를 꾀했나. "해외에 나가서 영화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한국형 갱스터의 특별함이 있다'고 한다. 처음엔 그들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희한한, 새로운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한국 갱스터 영화는 사실적인 내용을 영화로 만들든지, 사실적 이야기가 아니지만 굉장히 사실적으로 찍는다'고 하더라. 내용이나 표현 둘 중 하나에 사실적이 꼭 들어간다. 그래서 한국형 갱스터가 더 리얼해보인다고 했다. 홍콩 누아르라든가, 뉴욕 갱스터 영화를 기억해보니, 확실히 한국 갱스터 영화의 다른 점이 있는 것 같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감독님, 스태프들과 상의할 때 '이것을 어떻게 찍어야 진짜 같아 보일까'를 이야기했다. 우리 영화 현장에서는 리얼함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신세계'보다 조금 더 화려하다. '신세계'가 갱스터 영화이긴 하지만 액션이 많지는 않다. 이 영화는 첫 장면부터 액션이고 마지막까지 액션이다. 액션이 굉장히 다양한 형태로 촘촘하게 들어가 있다. '신세계'와의 차별점을 꼽는다면 역시 액션 장면이라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