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에 수양대군이 있다면,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는 레이가 있다. 수양대군이자 레이인 배우 이정재가 다시 한번 등장부터 강렬한 존재감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두 남자의 쫓고 쫓기는 이야기를 그린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이정재는 무자비한 추격자 레이를 연기한다. 레이는 한번 정한 타깃은 절대 놓치지 않는 인물로, 자신의 형제가 인남(황정민)에게 암살당한 것을 알게 되고 그를 향한 무자비한 복수를 계획한다. "이유는 중요한 게 아니야. 이젠 기억도 안 나네"라는 대사처럼 그저 죽이기 위해 달리고 찌르고 쏘는 것이 본능인 남자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잔혹한 살인마 안톤 쉬거(하비에르 바르뎀)를 연상케 한다.
이정재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무엇 하나 '묻히는 캐릭터'가 없었다. 주인공이 여럿인 영화에서도 언제나 두각을 드러냈고, 시간이 흘러도 회자되는 명장면과 명대사의 주인공이었다. 기시감이 들게 하는, 리스크가 적은, 이정재 표 캐릭터를 만들기보다는 언제나 특색있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이번 영화의 레이 역시 마찬가지. 이정재는 "새로운 것, 독창적 캐릭터를 보여드리기 위해 리스크를 감수했다"며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와 레이를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번 영화를 자평하자면. "보고 '나쁘지 않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액션이 잘 나왔다. 처음엔 편집본으로 영화를 봤다. 편집실에 가서 영화를 보면 항상 미완성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감안해서 보라는 이야기다. 극장에서 완성된 버전을 보니 후반 작업에 스태프들이 정말 총력을 기울였더라. 현장에서 찍은 꽤 많은 파트가 보완되고 더 재미나게 완성됐다. 시사회에서 박정민 옆에 있었는데, 박정민은 남의 영화 보듯이 보더라.(웃음) 옆에서 박정민이 재미있게 보기에 더 편하게 봤다."
-레이는 화려한 외양으로 첫 등장부터 눈길을 사로잡는다. "레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설명이 시나리오 상에 자세히 없다. 그러다보니 레이가 등장할 때부터, 외모만 봐도 이 인물이 하는 모든 행동들에 믿음을 줄 수 있어야 했다. 영화에 나온 것과는 다른 첫 등장신이 하나 더 있다. 클럽 같은 곳에서 안 좋은 뉴스를 듣고 장례식장으로 가는 장면이다. 그 장면이든 영화에 나온 장례식 장면이든, 첫 장면에서부터 강한 믿음을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첫 촬영이 장례식장 신이었는데, 현장에서 '이 장면을 첫 신으로 해야겠다'는 감독님과 스태프들의 이야기가 들렸다. 영화에서 레이의 신이 많지 않다보니, 다른 등장 신을 없애겠다는 소리가 청천벽력 같이 들렸다.(웃음) '죽어도 찍어야 된다'고 하다가 스태프들에게 설득을 당했다. 관객 분들이 '저 인간은 이런 인물일 것이다'라고 상상할 수 있게끔, 이미지적으로 강력하게 보여드려야겠다는 마음이 컸다."
-오랜만에 액션 연기를 해 힘들었다고 말했는데, 액션 연기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나. "시나리오 상에서 육박전은 거의 없었다. 대신 총기 액션이 많았다. 총기 액션은 (미리 연습해야 하는) 합이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다. 연출적으로 해결할 부분이 많아서 연습이 크게 필요하지 않다. 전에 총기 액션 훈련을 받은 적이 있기도 하다. 또 레이가 총을 열심히 쏘는 특전사 캐릭터도 아니다. '현장에서 적당히 분위기에 맞는 식으로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촬영을 가자마다 찍어야할 장면이 '악당들 몇 명을 제압하고 피 칠을 하고 나온다'였다. 7~8명을 제압하는 장면을 현장에서 만들면서 합을 봤더니 너무 많더라. 작은 칼을 이용한 액션신이 있는데, 그건 조금 더 연습을 해야 하는 동작이었다. 액션신을 찍으며 왼쪽 어깨가 파열이 됐다. 현지에 있는 병원에 갔더니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더라. '빅 매치' 때도 파열이 됐는데 그냥 몇개월 촬영 후에 수술했다. 끝나고 수술하겠다고 하고서 나머지 액션신을 찍었다. 요즘은 또 '오징어 게임' 촬영 중이어서, 다 마치고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레이는 화려한 의상이 포인트다. "준비할 땐 '킬러가 저렇게 화려해도 돼?'라는 의견이 많았다. 그래서 화려한 비주얼을 제외한 상태에서 다른 비주얼을 만들려고 하다보니 (다른 영화 속 캐릭터와) 차별화 하기 어려웠다. 다 거기서 거기인 듯한, 비슷한 느낌의 캐릭터만 보이더라. 결국 선택을 해야 하는 마지막 순간이 왔다. '기존에 봤었던 킬러나 살인자의 면모를 따라갈 것이냐', '독창적인 캐릭터를 만들 것이냐' 고민했다. 후자는 리스크가 크다. 그럼에도 새로운 것을 보여드리는 게 재미 측면에서 더 좋을 것 같았다. 그럼 어디까지, 얼만큼까지 강렬함을 끌어올릴 것인지 테스트했다. 평소 같이 일하던 개인 스타일리스트가 합류하면서 영화팀과 공동으로 작업했다. 저도 이런 작업은 처음이다. 영화팀과 개인 스타일리스트가 구할 수 있는 아이템은 전방위적으로 다 구하다보니 훨씬 수월했다. 그 많은 아이템을 테스트하며 만든 지금의 레이 모습이 과해보일 수도 있지만, 자연스러워 보이는 측면도 있다."
-등장 신이 많지 않아 연기하기 어려웠겠다. "분량이 많으면 캐릭터의 설명을 한번에 보여주지 않고 점진적으로 보여준다. (레이처럼) 신이 중간중간 배치돼 있으면서 한번에 강렬함을 주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를 생각해야 한다. '저 사람이 왜 저러지?'라는 생각이 들면 안 되니까, 더 많이 고민하게 된다. 고민의 가지 수가 훨씬 많고, 연습도 많이 할 수밖에 없었다. 짧은 대사 하나를 놓고도 감독님과 의견을 주고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