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현(31·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이 재학하던 시절, 안산공고는 '광현공고'로 불렸다. 투타에서 전국 최강이었던 안산공고 에이스는 키가 훤칠하고 늘 활짝 웃었다. "타고난 스타 감"이라고들 했다.
고교 2학년 때부터 3학년들을 압도했다. 2005년 아시아 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 유일한 2학년 국가대표로 참가했다. 그해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포철공고전에선 9이닝 동안 삼진 16개를 잡고 1-0 완봉승을 올렸다. 그날 안산공고가 뽑은 1점은 9회 선두타자 김광현이 안타로 출루한 뒤 2루 도루까지 성공해 만들어낸 점수였다.
그는 그때부터 메이저리그(MLB) 진출을 꿈꿨다. 당시 인터뷰에서 "언젠가는 꼭 '꿈의 무대'에 도전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듬해 SK 와이번스에 입단하고 에이스로 명성을 쌓아가는 동안에도 그 희망을 놓지 않았다. 한국 야구를 뒤흔든 유망주의 오랜 꿈은 결국 프로 입단 14년 만에 이뤄졌다.
쉬운 게 하나도 없었다. 선발 한 자리를 보장받지 못한 채 스프링캠프를 시작했다. 시범경기 호투로 로테이션 한 자리를 꿰차나 싶던 시점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퍼졌다. 개막이 하염없이 미뤄졌다. 그사이 부상 중이던 선발 후보 카를로스 마르티네스가 합류했다. 지난달 25일에야 개막한 정규시즌. 김광현은 결국 선발이 아닌 마무리 투수로 MLB 데뷔전을 치렀다.
얼마 뒤 마르티네스가 다시 이탈했다. 김광현에게 다시 선발 기회가 돌아왔다. 이번엔 팀 내에 코로나19 감염자가 속출했다. 첫 등판 후 23일이 지나서야 선발 데뷔전을 치렀다. 투구 수를 급격하게 늘릴 수 없어 3과 3분의 2이닝만 소화했다. 22일(한국시각) 신시내티와 두 번째 선발 등판에서 마침내 '진짜 김광현'을 보여줬다. 6이닝 무실점. 대망의 MLB 첫 승리를 얻기까지 먼 길을 돌아왔다.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건 김광현의 투구 템포다. 베테랑 포수 야디에르 몰리나가 사인을 내면, 김광현은 고개 한 번 젓지 않고 투구 준비를 시작했다. 자신감과 공격성, 믿음을 동시에 보여줬다. MLB닷컴 세인트루이스 담당 기자 제프 존스는 "인터벌이 다르빗슈 유(시카고 컵스)보다 10배는 빨랐던 것 같다"고 감탄했다.
김광현은 역동적인 투구폼만큼이나 표정도 변화무쌍한 투수다. 메이저리거 선배인 류현진(토론토 블루제이스)과 가장 다른 부분이다. 류현진은 '포커페이스'로 유명하다. 경기 중 아무리 아쉬운 상황이 벌어져도, 늘 같은 표정으로 평정심을 유지한다. 마운드에서 신뢰감과 안정감을 준다.
반면 김광현은 위기를 삼진으로 벗어났을 때 활짝 웃는다. 아쉬운 홈런을 맞으면 고개를 갸웃하며 크게 탄식한다. 감정이 읽히는 다채로운 표정으로 경기에 또 다른 드라마를 부여한다. 극적인 삼진 뒤에 따라오는 에이스의 환한 미소는 팀의 기운을 더 끌어올리는 효과도 있다.
한때는 김광현도 류현진의 포커페이스를 부러워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도, 그럴 필요도 없는 걸 알고 있다. 그는 지난해 "잘 웃는다고 좋아하는 분도 많았지만, 그만큼 욕도 많이 먹었다. 나도 표현을 자제해야 하나 신경 쓴 적도 있다. 지금은 경기 분위기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내 스타일대로 하려고 한다"고 털어놓았다.
'스마일 K' 김광현은 아직 '100%의 미소'를 보여주지 못했다. 모든 게 새롭고 어색한 MLB의 루키다. 경기 내내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2007년의 한 장면이 오버랩된다. 신인 김광현은 현역 최고 포수였던 박경완(현 SK 감독대행)과 호흡을 맞췄다. 그때도 그는 자기 공을 믿고, 좋은 포수를 믿었다. 자신감을 앞세워 스포트라이트의 부담을 이겨냈다. 지금 김광현의 파트너는 MLB 최고 포수 몰리나다. 또 한 번 믿고 따를 동반자를 만났다.
김광현은 MLB 첫 시즌을 위해 출국하면서 "좋은 성적을 내고 돌아와 귀국 때도 많은 취재진 앞에서 인터뷰하고 싶다. 아직은 나만의 희망일 뿐"이라고 말했다. 김광현만의 희망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많은 야구팬이 김광현을 더 자주, 더 많이 보고 싶어한다. '스마일 K'의 미소를 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