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20일 KT는 '결단'을 내렸다. KBO리그 적응에 실패한 외국인 타자 조니 모넬을 퇴출했다. 정규시즌을 3분의 1밖에 치르지 않은 시점이었다. 9위까지 떨어진 성적을 고려하면 하루라도 빨리 대체 선수를 데려와야 했다.
외국인 스카우트를 담당하는 이충무 운영팀 차장과 미국 현지 코디네이터 데이브 디프레이타스가 속전속결로 일을 처리했다. 수십 명의 선수 중 최종 후보군을 5명으로 압축, 협상을 시작했다.
멜 로하스 주니어(30)도 최종 후보 중 하나였다. 하지만 우선 영입 대상은 아니었다. 이충무 차장은 "기록만 보면 영입 대상으로 보기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애틀랜타 산하 마이너리그 트리플A(그윈넷)에 있던 로하스의 시즌 성적은 타율 0.259, 6홈런, 31타점이었다. 출루율(0.318)과 장타율(0.406) 모두 낮았다. 정확도가 뛰어나지도, 펀치력이 강력하지도 않았다. '데이터'를 봤을 때 매력이 크지 않았다. KBO리그의 다른 구단들이 그에게 적극적으로 달려들지 않았던 이유였다.
그래도 KT 구단은 디프레이타스의 추천으로 로하스를 최종 후보군에 넣었다. 그리고 이충무 차장이 미국으로 날아가 그의 기량을 체크했다. 현장에서 직접 본 로하스에게는 기록으로 나타나지 않는 장점이 꽤 많았다고 한다.
이충무 차장은 "경기 전 훈련할 때부터 집중적으로 체크했다. 빠른 공 대처가 썩 좋지 않았다. 그러나 투수들의 구속이 떨어지는 KBO리그에서는 충분히 통할 수준이었다. 상체만으로 스윙하는 게 아니라 하체를 잘 활용하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변화구 대처도 좋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무엇보다 야구에 대한 태도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수비할 때도 열심이었다. 치고 달리는 모습이 수준급이었다"고 했다. 마이너리그 성적이 저조했던 건 메이저리그(MLB) 콜업이 늦어져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최종 후보군 5명 중 3~4순위였던 로하스에 대한 평가가 뒤집혔다. 관건은 계약 성사 여부였다. 로하스는 KT의 제안을 한 번에 수락하지 않았다. MLB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그는 2010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3라운드 전체 84번으로 피츠버그의 지명을 받았다. 시카고 화이트삭스 마무리 투수 출신 에디슨 리드(전체 95번), 올 시즌 필라델피아 주전 포수인 J.T 리얼무토(전체 104번)보다 지명 순번이 더 빨랐다. 마이너리그 최고 레벨인 트리플A에서 MLB 데뷔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충무 차장은 로하스의 에이전트를 계속 설득했다. 로하스의 아버지 멜 로하스 시니어도 "한국에서 잘하면 미국에 다시 올 수 있다"고 조언했다. 로하스 시니어는 MLB 통산 126세이브를 기록한 마무리 투수 출신이다. 일주일의 장고 끝에 로하스는 KT의 손을 잡았다.
출발은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다. KBO리그 데뷔전이었던 2017년 6월 13일 포항 삼성전에 대타로 출전해 삼진으로 물러났다. 첫 10경기 타율이 0.167(36타수 6안타). 퇴출당한 모넬의 타율 0.165와 비슷했다. "왜 이런 타자를 데려왔느냐"는 비난의 목소리가 커졌다.
당시 로하스는 이충무 차장에게 "열흘만 시간을 달라. 자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약속을 지켰다. 6월 24일 인천 SK전을 기점으로 타격감이 올라가더니 2017시즌을 타율 0.301, 18홈런, 56타점으로 마쳤다.
로하스는 4년째 KT 유니폼을 입고 있다. 올 시즌 성적은 압도적이다. 26일까지 89경기에 출전해 타율 0.354, 31홈런, 84타점을 기록했다. 홈런, 타점, 장타율(0.696), OPS(1.105)를 비롯한 공격 대부분의 지표에서 1위다. 정규시즌 MVP 유력주자라는 말이 벌써 흘러나오고 있다.
이충무 차장은 삼성에 있을 때 릭 벤덴헐크(현 소프트뱅크)를 KBO리그에 데려오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도 로하스는 특별한 존재다. 이충무 차장은 "한국 야구를 만만하게 보는 외국인 선수들이 꽤 있다. 그럴수록 적응이 늦고, 좋은 성적을 내기 힘들다"며 "로하스는 팀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잘 준비한다. 장타를 더 때려려고 몸집이 커진 적도 있었는데, 팀에서 외야 수비 능력을 요구하자 몸을 다시 슬림하게 만들었다. 마인드가 정말 좋다"고 엄지를 치켜들었다. 트리플A에서 평가했던 모습 그대로 KBO리그에 녹아들었다.
외국인 선수는 단기간에 성적을 내지 않으면 퇴출 위기에 몰린다. 그만큼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로하스도 마찬가지였다. KT는 그걸 이해하고 기다렸다. 이충무 차장은 "몇 경기 못 했다고 외국인 선수를 비난하기보다, 여유를 갖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로하스가 좋은 예"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