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재미있는 일이라도 배가 불러야 즐길 수 있다는 은유적 표현이다. "한국은 치맥 공화국"이라는 말이 있듯, 국내 축구팬들이 가장 즐기는 간식은 치킨과 맥주다. 열정적인 유럽 축구팬들도 경기만 보는 건 아니다. 그들은 과연 무슨 간식을 즐겨 먹을까.
유럽축구연맹(UEFA)은 지난 2015년 축구팬이 하프 타임 휴식 시간에 즐기는 간식을 조사해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영국과 아일랜드 팬들은 전통 음식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United Kingdom)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와 북아일랜드 등 4개 지역으로 이루어진 연방 국가다. 아일랜드 섬에서 북쪽을 제외한 나머지 영토는 아일랜드 공화국이다. 이 지역 팬들이 공통적으로 즐기는 간식은 고기를 넣어 만든 미트 파이(meat pie)다. 파이는 종류에 따라 애피타이저, 주요리, 또는 디저트로 다양하게 서빙이 가능하다.
국내에서는 주로 사과, 체리, 레몬 등이 들어간 과일 파이와 초콜릿이나 크림이 더해진 디저트용 파이가 인기 있다. 서양인들은 다양한 고기 종류와 어패류 그리고 야채, 과일 등이 들어간 파이를 즐겨 먹었다. 특히 영국인들은 디저트용 파이외에도 닭고기, 소고기 등에 버섯, 감자, 양파 등의 야채를 곁들인 미트 파이를 좋아한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새해 첫날 저녁 식사로 스테이크 파이를 먹는 전통이 있다.
영국 마트에 가면 인스턴트 미트 파이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냉장 보관된 파이는 차가운 채로 섭취해도 되고,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기도 한다. 파이는 특히 주머니가 가벼운 학생들의 간식으로 사랑받고 있다.
영국 축구팬들은 경기 시작 전이나 하프 타임 때 미트 파이를 보브릴(Bovril)과 같이 즐긴다. 라틴어에서 유래된 보브릴이란 단어는 황소로부터 얻는 거대한 힘을 의미한다. 독일을 통일하려는 비스마르크와 이를 저지하려는 프랑스가 충돌해 일어난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1870~71년)에서 나폴레옹 3세는 프랑스 군대에 보급하기 위해 100만개의 소고기 캔을 스코틀랜드 출신의 사업가에 주문했다. 이후 이 음식은 보브릴이라는 이름으로 영국 전역에서 사랑받게 되었다. 1차 세계대전에서도 '전투 식량'으로 이용된 보브릴은 후에 영국 축구 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는다.
영국은 여름에도 초겨울 날씨를 경험할 수 있을 만큼 날씨가 변화무쌍한 것으로 악명이 높다. 따라서 추위를 피하기 위해 경기장에서 축구팬들은 보브릴에 뜨거운 물을 부어 소고기 차(tea)를 만들어 마신다. 이렇듯 영국 축구팬들이 사랑하는 전통적인 간식은 미트 파이와 보브릴이다. 하지만 펍(pub)에서 TV로 축구를 관람할 때 축구팬들은 보브릴보다 맥주, 그리고 간단한 안주로 크립스(crisps)를 선호하기도 한다.
UEFA 홈페이지의 지도에서 볼 수 있듯이 유럽 대륙 축구팬들에게 사랑받는 간식은 크게 두 가지다. 스페인을 비롯한 동유럽에서는 씨앗(seeds)이 인기 있는데, 특히 해바라기 씨앗이 가장 사랑받는다. 씨앗 외에도 피스타치오, 땅콩 같은 견과류도 이 지역 팬들이 즐기는 간식이다.
그에 반해 지도에서 빨간색으로 표시된 서유럽이나 북유럽 축구팬에게 인기 있는 간식은 핫도그나 소시지가 들어간 샌드위치다. 지역에 따라 커피나 차를 선호하는 팬들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유럽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음료는 단연 맥주다.
지도에서 노랑색으로 표시된 나라들은 지역 특유의 음식을 선호한다.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 노랑색으로 표시된 벨기에는 그들의 '맥주 문화'가 유네스코(UNESCO)로부터 무형 문화 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다양한 맥주로 유명한 나라다. 벨기에 축구팬들은 맥주를 벗삼아 프렌치 프라이에 케첩이 아니라 마요네즈를 뿌려 먹는다.
프렌치 프라이라는 이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감자 튀김의 본고장이 프랑스라고 알고 있다. 프랑스도 이 음식이 자국에서 기원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벨기에 또한 자신이 감자튀김의 원조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에 뿌리내린 벨기에 이민자들이 미국에 프렌치 프라이를 소개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벨기에 이민자들이 프랑스어(벨기에 공식 언어는 프랑스어, 네덜란드어, 독일어)를 쓰기 때문에 오해가 생겼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벨기에 사람들은 프렌치 프라이라는 이름을 "프랑스의 미식(美食) 패권주의"라고 비꼬기도 한다.
한편 9.11 테러에 대한 보복으로 미국 정부가 2003년 이라크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할 때 프랑스는 이에 동조하지 않았다. 이에 미국 내에서 한때 반(反) 프랑스 정서가 불면서 프렌치 프라이 대신 '프리덤(freedom) 프라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