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펜딩 챔피언' 두산이 승부수를 띄웠다. 2019시즌 다승 2위 이영하(23), 2018시즌 세이브 3위 함덕주(25)의 보직을 맞바꿨다. 김태형 두산 감독은 8월 30일 잠실 LG전을 앞두고 "선발 투수였던 이영하가 마무리 투수를 맡고, 마무리 투수였던 함덕주가 선발진에 합류한다"고 밝혔다.
두 투수는 국가대표에서도 같은 보직을 맡았다. 올해 정규시즌 일정도 이미 70% 가까이 치른 시점이기도 하다. 2020년 9월, 두산의 승부수가 눈에 띄는 이유다.
징후는 열흘 전 감지됐다. 김태형 감독이 지난달 20일 잠실 롯데전을 앞두고 "이영하와 함덕주에게 '둘이 보직 한 번 바꿔볼래'라고 농담처럼 말했다. 선수들이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이영하는 '3이닝 세이브도 가능하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이영하는 전날(19일) 등판한 롯데전에서 6⅔이닝 6실점 하며 패전투수가 됐다. 함덕주는 팔꿈치 통증을 다스리고 막 1군에 콜업된 상태였다. 김태형 감독의 농담처럼 제안했지만, '뼈'가 있었다.
함덕주는 이전부터 선발 투수가 되길 원했다. 지난 2월 미야자키(일본) 스프링캠프에서 만난 그는 "나는 클로저에 맞는 성향이 아닌 것 같다. 마음이 편안해야(긴박한 상황이 아니어야) 내 공을 던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 시즌 3호 세이브를 기록한 뒤에는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선발 투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이영하에게는 전환점이 필요했다. 7월 7일 잠실 LG전에서 시즌 3승을 거둔 후 그는 9경기 연속 승수 추가에 실패했다. 수비 실책, 저조한 득점 지원, 불펜 난조 등 악재가 있었다. 근본적인 문제는 이영하의 투구였다. 상대 타자들은 이영하를 집중적으로 분석해 올 시즌을 치르는 반면, 그의 완급 조절 능력과 수 싸움은 정체됐다.
김태형 감독은 두 투수의 속내를 진작에 눈치챘다. 최근 김원형 투수 코치를 통해서 진심으로 보직 이동을 바라고 있는 두 투수의 바람을 전해 들은 뒤 실행에 옮겼다, 김 감독은 "(이)영하는 긴 이닝을 풀어가는 데 답답함이 있는 것 같았다. 뒤에서(마무리를 맡아) 짧은 이닝을 힘으로 붙고 싶어한다. (함)덕주도 선발 투수로 던지길 바랐다"며 결단 배경을 전했다.
올해 두산에는 부상 선수가 많다. 이용찬이 5경기 만에 팔꿈치 부상으로 이탈한 뒤 선발진이 내내 흔들렸다. 불펜진도 지난해보다 크게 약해졌다. 실제로 데뷔 1~3년 차 젊은 투수들이 고비마다 선전하며 리그 상위권을 지켰다.
두산은 선두 경쟁에서는 밀려난 상태다. 2년 연속 우승에 도전하기 위해서 터닝포인트가 필요했다. 마침 왼발 골절상을 당했던 외국인 투수 크리스 플렉센도 복귀를 앞두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핵심 투수들의 보직을 맞바꾸는 승부수를 던졌다. 막판 스퍼트를 위한 김태형 감독의 세팅이다.
두산의 마운드 개편에는 기대와 우려가 공존한다. 이영하는 공격적인 성향이 강하다. 1~2이닝에 전력을 쏟아붓는 클로저가 더 잘 어울릴 수 있다. 지난해 11월 열린 프리미어12 대회에서는 구원 등판 뒤 힘으로 일본 타자들을 제압하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는 보직 변경 첫날인 8월 30일 잠실 LG전도 5-5 동점이던 9회 등판해 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반면 이영하는 통산 득점권 피안타율(0.291)이 높은 편이다. 세이브 상황 등판 경험도 6경기에 불과하다. 1점 차 승부의 압박감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함덕주는 2017년 풀타임 선발로 던진 경험이 있다. 마무리 투수로 나설 때도 구위보다는 기교로 승부하는 유형이었다. 마무리를 경험하고 선발로 던지면 더 여유 있는 투구를 기대할 수 있다. 불펜에서 선발로 전환한 많은 투수들이 이런 효과를 보고 있다.
그러나 시즌 중 선발 전환에는 부담이 따른다. 보통은 스프링캠프에서 투구 수를 충분히 끌어 올린 뒤 선발진에서 경쟁한다. 함덕주가 현재 2군에서 투구 수를 늘리고 있지만, 단기간에 적응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베테랑 투수 임창용(은퇴)도 2018년 후반기 마무리에서 선발로 전환했지만, 기복이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