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병철 감독이 이끄는 한국전력은 8월 29일 충북 제천체육관에서 열린 2020 제천·MG새마을금고컵 프로배구대회 남자부 결승전에서 대한항공을 세트스코어 3-2(25-18, 19-25, 25-20, 23-25, 20-18)로 꺾었다. 2016년과 2017년에이어 세 번째 컵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전력은 최근 두 시즌 연속 최하위였다. 2018~19시즌 4승 32패(승점 19)로 꼴찌였다. 6위 KB손해보험(승점 46)과 승점 차도 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6라운드 도중 중단된 지난 시즌에도 6승 26패(승점 24)로 최하위에 머물렀다. 장병철 한국전력 감독은 "지난 시즌은 끔찍했다. 상상도 하기 싫다. 내가 많이 부족했다"라고 돌아봤다.
팀 구성이 크게 달라진 한국전력은 컵 대회에서 달라진 면모를 선보였다. 특히 한국전력의 외국인 선수 카일 러셀이 맹활약하며 대회 MVP(30표 중 20득표)에 올랐다.
대회 개막 전 러셀은 퇴출 가능성까지 언급됐다. 한국전력은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1순위 추첨 확률이 가장 높았지만, 운이 따르지 않아 5순위로 러셀을 뽑았다. 러셀은 지난 세 시즌 동안 서브 리시브를 하지 않는 라이트 공격수로 뛰었다. 하지만 자유계약선수(FA) 박철우(라이트)가 합류해, 러셀의 포지션이 레프트로 바뀌었다. 연습경기에서 상대 팀은 러셀에게 서브를 집중했고, 이는 러셀의 공격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컵 대회 개막 후 러셀은 '백조'로 거듭났다. 결승전에서는 양 팀을 통틀어 가장 많은 27점(공격 성공률 40.35%)을 올렸다. 이번 대회 5경기에서 99점, 성공률 52.76%를 기록했다. 장병철 감독은 "솔직히 러셀이 이 정도로 활약할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이런 모습을 보여준다면 정규리그에서도 믿고 쓸 수 있다"고 기대했다.
러셀은 "한국에서 외국인 선수로 살아남는 건 쉽지 않다. 상당한 압박감도 있었다"라며 "난 연습 때와 경기 때 에너지가 다르다. 실전에서 다른 모습을 보여줄 자신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러셀은 재미교포 이유화씨와 결혼했다. 이씨도 미국 대학에서 배구 선수로 활약했다. 러셀은 "한국에 있는 아내의 가족도 큰 응원을 보내준다. 아내에게 고맙다. MVP 상금(300만원)은 아내를 위해 쓰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박철우의 합류 효과도 크게 작용했다. 올해 삼성화재를 떠난 그는 한국전력 역대 최고액(3년 총액 21억원)을 받고 이적했다. 박철우는 결승전 5세트에서 해결사로 활약했다. 장병철 감독은 "박철우가 이번 대회 컨디션이 그리 좋지 않았지만, 중요한 순간 결정력을 보여줬다. 후배를 다독이는 리더 역할이 돋보였다"고 칭찬했다.
오프시즌 한국전력은 공격적인 투자로 전력을 보강했다. 수비가 뛰어난 레프트 공격수 이시몬을 영입했다. 또 2년 차 세터 김명관이 주전으로 낙점했다. 러셀과 박철우에 이어 장신 세터까지 합류해 높이를 자랑했다.
역대 컵대회와 V리그 챔피언결정전을 동시 석권한 경우는 2006년 현대캐피탈, 2009년 삼성화재 두 차례뿐이었다. 한국전력을 V리그 우승권 전력으로 보기 어렵지만, 지난 두 시즌 최하위로 떨어져 구겨진 자존심은 회복할 수 있을 전망이다. V리그 첫 외국인 사령탑 로베르토 산틸리 대한항공 감독은 "한국전력이 우승 자격을 갖췄다. 우리보다 서브와 경기 운영 능력이 더 좋았다"라고 높이 평가했다. 장 감독은 "이번 대회로 그치지 않고 정규시즌 때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