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이하 부국제)가 축소 개최를 추진한다. 변수는 단연 민족 대명절 추석이다. 추석 이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상황에 따라 아예 개최를 포기할 가능성도 높다.
14일 진행된 온라인 공식 기자회견에서 이용관 이사장은 "부국제는 지난 5월부터 사회적 거리두기 1단계 상황에 맞춰 가능한 정상 개최를 하기 위해 준비했다. 하지만 8월 중순 이후 상황이 급변하면서 한달간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고, 일정 변경이 불가피하게 됐다"고 말했다.
당초 내달 7일부터 16일까지 내정했던 개최 일정은 21일부터 30일까지 진행하는 것으로 조정했고, 강력한 방역과 안전한 운영을 위해 개·폐막식과 레드카펫, 야외무대 인사, 오픈토크 등 다양한 부대 행사는 모두 취소, 소규모 모임, 리셉션도 일절 진행하지 않는다.
꾸준히 참석을 논의 중이었던 해외 영화 관계자들 역시 초청하지 않기로 내부 논의를 마쳤다.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 아시아프로젝트마켓, 비프 포럼 등도 온라인으로 열린다.
개최가 약 한 달 가량 남은 시기. 누구도, 무엇도 확답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이날 이용관 이사장과 전양준 집행위원장 역시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최선의 노력을 다 하겠다"는 약속만 여러 번 반복했다.
이용관 이사장은 "0순위 원칙은 국가적인 방침에 따르겠다는 것이다. 현 상태가 지속된다면 개최는 어려울 것이다"며 "방역은 물론, 의료 문제에 있어서도 자문단을 구성해 꾸준히 논의·조정 중이다. 전문가의 의견을 절대적으로 존중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올해 부국제는 '영화 상영'에만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비정상 개최일지언정 개최는 개최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개·폐막작을 비롯해 공식 초청작이 발표됐다. 총 상영작은 68개국 192편이 선정됐다. 약 300편이 넘었던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규모다.
개막작은 홍금보·허안화·담가명·원화평·조니 토 등 홍콩 감독 7명이 함께 제작한 옴니버스 영화 '칠중주: 홍콩 이야기', 폐막작은 2003년 개봉한 이누도 잇신 감독의 동명의 원작을 리메이크한 애니메이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타무라 코타로 감독)'이다.
특히 영화제 개최를 포기하면서 공식 초청작을 발표했던 칸국제영화제 의견을 수렴, '반도' 등 일명 '칸2020' 타이틀이 붙은 영화 중 23편을 부산에서 만날 수 있다. 선댄스영화제 대상에 빛나는 한예리·윤여정의 할리우드 진출작 '미나리'도 부국제에서 소개된다.
남동철 수석 프로그래머는 "올해 많은 영화제들이 축소 개최되거나 취소 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옥같은 작품들은 영화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베를린 경쟁부문 초청작, 베니스영화제 수상작 등 알짜배기 작품들이 마련돼 있다"고 자신했다.
전양준 집행위원장은 "다만 상영도 이전처럼 2~3회는 어려울 것 같다. 평균 1회 상영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관객과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최대한 다양하게 준비하고자 노력 중이다"고 밝혔다.
이용관 이사장은 "개최를 포기한다 하더라도 온라인 상영은 준비돼 있지 않다. 월드 프리미어를 중심으로 출품한 작가와 제작자들 같은 경우 온라인 공개를 매우 곤란해 하기 때문에 또 다시 협의를 거쳐야 하는 문제다. 임박해서 고민하고 가능한 방법을 찾겠다"고 덧붙였다.
10월까지 이어진 코로나19에 부국제마저 결국 타격을 입게 됐다. 매 해 태풍을 뚫고서라도 비행기로 혹은 기차로 부산을 향해 이동하던 스타들의 모습도 올해 만큼은 볼 수 없다. '영화제' 타이틀은 '상영회'가 될 전망. 이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2016년 영화인들의 대대적 보이콧으로 '반쪽 행사'라는 오명 속 20여 년 역사에 큰 위기를 맞았던 부국제는 이듬해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부산에 방문하면서 재도약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고, 지난해 대대적인 수뇌부 교체로 다시 정상화의 물꼬를 텄다.
특히 아시아 최대 영화제로 국제적 위상을 떨치던 분위기가 다소 시들해진 시기, 칸영화제부터 아카데미시상식까지 1년 내내 이어진 '기생충(봉준호 감독)'의 낭보는 한국 영화계를 비롯해 부산국제영화제에도 큰 힘을 실어줬다.
하지만 코로나19라는 재난 앞에서는 모든 것이 속수무책이다. 관객 유치도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이용관 이사장은 "최종 시안은 내달 15일께 확정되지 않을까 싶다"며 "안전을 최우선으로 부국제가 가야 할 방향과 역할을 심사숙고해 진행하도록 하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