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격 기계’ 김현수(32·LG 트윈스)가 ‘타점 생산’ 기능을 추가 장착했다. 득점 찬스마다 방망이가 춤을 춘다. 프로야구 원년 타격왕 백인천(78)이 세운 역대 최고 득점권 타율 기록(0.476) 경신에 대한 기대감이 점점 높아진다.
LG는 23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 경기에서 6-2 승리를 거뒀다. 4번 타자 김현수의 활약이 눈부셨다. 김현수는 세 번의 득점권 찬스에서 타석에 들어서 안타 2개, 희생플라이 1개를 쳤다. 전날까지 0.505였던 김현수의 득점권 타율은 0.514(105타수 54안타)가 됐다. 시즌 타율(0.353, 442타수 156안타)보다도 1할 5푼 이상 높다. 만루에선 더 강했다. 12타수 9안타, 희생플라이 1개, 볼넷 1개를 기록했다. 만루홈런은 무려 3개. 류중일 LG 감독은 “그러라고 많은 돈(4년 총액 115억원)을 주는 것”이라며 껄껄 웃었다. 주자가 없을 때 타율은 0.270에 그친다.
프로야구 역사상 규정타석을 채우고 단일 시즌 득점권 타율 5할을 넘긴 선수는 단 한 명도 없다. 역대 최고 기록은 유일한 ‘4할 타자’ 백인천이 갖고 있다. 1982년 MBC 청룡 감독 겸 선수 백인천은 타율 0.402를 기록했는데, 득점권 타율은 0.476이었다. 2위는 1983년 롯데 정학수(0.462). 2000년대 이후 최고 기록은 2010년 홍성흔(당시 롯데)의 0.438이다. 메이저리그에서도 득점권 타율 집계를 시작한 1974년 이후 5할을 넘긴 선수는 없다.
세이버메트릭스(야구를 수학·통계학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에서는 득점권 타율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원래 잘 치는 타자가 득점권 타율도 높다’는 해석이 우세하다. 한 시즌에 득점권 타석은 100~200번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기록 자체의 변별력이 떨어진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선수들 사이에선 ‘찬스에 강한 타자’가 있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선수 자신이 말하는 비결은 ‘평정심’이다. 김현수는 “뭐가 씌었나 보다”라고 웃으며 “올시즌도 평소랑 똑같이 하고 있다. 잘 되는 때가 있고, 안 되는 때가 있다. 지금은 잘 되는 때고, 좋은 흐름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라고 말했다. 김현수는 “클러치 상황에서 강해졌다기 보다는 경험이 많이 쌓이면서 힘을 빼는 법을 알게 된 것 같다. 어렸을 때는 (득점권에서) 흥분하는 스타일이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데뷔 초기 5시즌 동안 김현수의 득점권 타율은 0.333이었다. 두산 유니폼을 입었던 프로 초기엔 포스트시즌에서 부진해 ‘가을에 약하다’는 이미지도 있었다. 이후 차츰 좋은 타자로 성장했다. 미국에서 돌아와 2018년 LG에 입단한 뒤 득점권 타율이 0.410으로 올랐다. 올해만 ‘반짝’하는 게 아니다.
기술적으로는 히팅포인트를 앞쪽으로 가져간 게 주효했다. 김현수는 지난해 공인구 반발력 조정 여파로 홈런 11개에 그쳤다. 그는 전지훈련을 떠나기 전 “조금 더 앞쪽에서 공을 맞혀 멀리 날리려고 한다”고 했다. 아직 30경기가 남았는데도 올 시즌 홈런 숫자(21개)는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김현수는 “생각했던 대로 타구를 앞에서 치고 있다”고 했다.
2008년 최연소 타격왕(만 20세)에 오른 김현수는 ‘타격 기계’란 별명을 얻었다. 이후 타격왕 2회(2008년, 2018년)를 비롯해 최다안타, 출루율 1위를 차지한 적이 있다. 하지만 타점 1위를 기록한 적은 없다. LG도 아직까지 타점왕을 배출하지 못했다. 타점 타이틀을 거머쥔다면 구단과 개인 모두 최초의 역사다. 김현수는 23일 현재 멜 로하스 주니어(KT 위즈)와 함께 타점 공동 1위다.
김현수는 뛰어난 ‘팀 플레이어’이기도 하다. 외국인 투수 타일러 윌슨은 김현수에 대해 “리그 최고의 선수이자 환상적인 리더”라고 칭찬했다. 비시즌에 김현수와 같이 훈련하는 후배들도 많아 ‘김관장’이란 별명을 얻었다. 오랜 경험을 통해 얻은 운동 노하우나 타격 기술을 동료와 후배들에게 아낌없이 알려준다.
이적 1년 만인 지난해부터는 주장까지 맡았다. LG에서만 19년을 뛴 박용택은 “성적이 좋다는 이유도 있지만 더그아웃 분위기, 선수들의 자신감 모두 최고다. 현수와 (부주장 김)민성이가 애를 많이 썼다”고 했다. 김현수는 “주장이 된 후 성격이 좀 더 안 좋아졌다. 잔소리가 늘었다. 매만 주는 게 아니라 약도 많이 주려 애쓴다. (나한테) 받은 게 있으니 (동료들도) 내 말을 잘 들어야 한다”며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