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밖에서 뛰어노는 걸 좋아했다. 동네 친구들과 야구와 축구, 농구를 하며 땀을 뻘뻘 흘렸다. 다니던 학교에는 운동부가 없어, 아버지는 '리틀 야구'를 제안했다. 그렇게 학업과 운동을 병행했다. 운동장에 모여 친구들과 야구공을 주고받으며, 그라운드를 마음껏 뛰는 날은 손꼽아 기다렸다.
소년이 초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어느 날, 세계적인 스포츠용품 제조사가 '꿈나무 야구 교실'을 열었다. 이 자리에는 '코리안 특급' 박찬호(당시 LA 다저스)와 '라이언킹' 이승엽이 일일 코치로 참가했다. 그 외에도 박한이와 송승준이 함께 했다고 한다. 이들처럼 프로 선수를 희망한 '야구 꿈나무' 소년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감격스러운 하루. KBO 역대 37번째 사이클링 히트(한 경기에서 단타, 2루타, 3루타, 홈런을 기록)를 달성한 롯데 오윤석(28)의 유년 시절 뜻깊은 추억이다. 그는 "당시 이승엽 선배님과 따로 사진도 찍었다. 행사에 참석한 대선배님께서 일일 레슨도 해주셨다"며 "'나도 저런 야구 선수가 되어야지'라고 다짐했던 추억이 떠오른다"고 회상했다.
그에게 '꿈 같은 하루'가 또 생겼다. 지난 4일 사직 한화전에서 데뷔 첫 만루 홈런을 포함한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했다. 1번 타자·2루수로 선발 출장한 오윤석은 1회 말 첫 타석에서 좌중간 2루타, 2회 말 2사 2루에서는 좌전 적시타를 뽑았다. 3회 말 1사 만루에서 좌월 만루 홈런을 터뜨린 뒤 5회 말 무사 1루에서 가장 어렵다는 3루타를 때려 대기록을 완성했다. 역대 27번밖에 나오지 않은 진기록. 그 가운데서도 오윤석을 처음으로 만루 홈런을 포함해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했다. 5회 이전에 사이클링 히트를 완성한 건 2017년 6월 7일 정진호(당시 두산) 이후 오윤석이 두 번째다.
일간스포츠는 10월 첫째 주 조아제약 주간 MVP로 오윤석을 선정 했다. 프로 데뷔 후 처음 상을 받은 그는 "선배님들의 수상 모습을 보며 부러웠다. '내게도 상을 받는 날이 올까?'라고 생각했다. 나와 관계없는 먼 이야기로 여겼는데 정말 기쁘고 감사하다"라며 "더 열심히 하겠다는 동기부여가 된다. 아직도 내가 달성한 게 맞나 싶을 만큼 믿어지지 않는다"라고 반겼다.
대기록 달성의 순간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는 "5회 3루타를 칠 때 숨이 차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잠시 후 나도 모르게 울컥해 한동안 머리를 땅에 박았다"고 떠올렸다. 타석에 들어서기 전까지 기록 달성조차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그는 자신이 친 공이 우중간을 가르자 더그아웃에선 '달려~달려~'라는 선배들의 외침을 들었다.
그제야 오윤석은 1루를 돌며 '아~3루타만 추가하면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오윤석은 "(팀이 9-3으로 앞서) '여기선 죽어도 된다'고 생각하고 이 악물고 뛰었다"고 전했다.
대기록 달성 전까지 야구팬 사이에서도 '오윤석' 이름 석 자는 낯설었다. 진기록을 작성하면서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며 '깜짝 스타'로 떠올랐다. 그는 "가문의 영광이다. 그저 신기하다"라며 감격했다. 이어 "지금껏 하루 중 가장 많은 연락을 받은 것 같다"라며 "전화번호 변경 뒤 알려주지 않아 전혀 모르는 번호로도 많은 연락이 오더라"고 웃었다.
2020년 10월 4일. 사이클링 히트는 물론 오윤석이 개인 한 경기 최다안타(5개) 최다 타점(7개)을 기록한 날이기도 하다. 그는 "훗날 내 야구 인생을 돌이켜 보면 10월 4일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고 여겼다.
두 달 전 구단 영상을 통해 '한 경기 3홈런'과 '사이클링 히트' 중 어떤 것을 달성해보고 싶으냐는 질문에 그는 주저 없이 사이클링 히트를 꼽았다. 그는 "홈런 타자 유형은 아니어서 아마추어 시절부터 사이클링 히트 기록에 욕심이 있었다"라며 "사실 그 질문조차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하늘에서 도와준 것 같다"라고 웃었다.
자양중으로 진학하며 본격적으로 '엘리트 야구'를 시작한 오윤석은 경기고 3학년 때 롯데 2차 8라운드(전체 59순위) 지명을 받았다. 그는 연세대 진학을 택했다. 4년 뒤 다시 참가한 신인 드래프트에선 전혀 이름이 호명되지 않았다. 오윤석은 "미지명 되자 '고교 졸업 후 프로에 갔어야 했나'라고 잠시 생각했지만, 당시에는 내 기량이 너무 부족해 보였다. 선택에 후회는 없었다"라고 돌아봤다.
롯데가 손을 내밀었다. 육성 선수로 입단했다. 2015년 꿈에 그리던 1군 무대를 밟은 그는 상무 야구단 제대 후 지난해 76경기에 출전했다. 많은 기회를 얻었지만, 타율 0.222(198타수 44안타)로 기대에 못 미쳤다. 퓨처스(2군)에서 올 시즌을 맞은 그는 최근 주전 2루수 안치홍의 부상으로 출전 시간을 늘려가더니 존재감을 키웠다.
6일 현재 46경기에서 타율 0.354를 기록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1군 분위기를 익히고 경험을 쌓았다. 올 시즌은 내가 기대한 것보다 잘해 놀랍다"라고 기뻐했다. 이어 "기회를 주신 허문회 감독님을 비롯해 1~2군 코치진에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6일 감사의 의미를 담아 1~2군 선수단에 각각 피자 30판씩, 총 60판을 선물했다.
새 가족이 생겨 책임감이 커진 영향도 있다. 오윤석은 지난해 결혼했고, 올해 4월 첫아들을 얻었다. 그는 "우스갯소리로 '분윳값 버프' 덕분이라고도 한다"며 부끄러워했다.
오윤석의 매력은 득점권에서 빛난다. 주자가 있을 때(타율 0.396), 또 그보단 득점권(0.485)에서 성적이 훨씬 좋다. 오윤석은 "나도 신기하다. 사살 아마추어 시절에는 (찬스에서 약해) 주변으로부터 '간이 작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긴장을 많이 했던 것 같다"라며 "올해는 2군에서 하는 것처럼 냉정하게 판단하며 플레이를 할 수 있을까? 혹은 특정 상황을 가정하고 연습을 많이 했다"고 귀띔했다. 또 교체 출장 시 타율(0.214)보다 선발 출장 시 타율(0.374)이 훨씬 포다.
보완점은 수비다. 주 포지션이 2루수인 그는 올해 1루수, 3루수로 나선 적도 있지만 최근 안치홍의 부상으로 선발 기회를 얻고 있다. 242이닝 동안 수비 실책이 5개로 많은 편이다. 그는 "당장 오늘부터라도 더 많이 연습하고 보완해야 할 것 같다"고 꼽았다.
'리틀 야구 선수'로 시작해 육성 선수 입단→백업까지 쉽지 않은 길을 견뎌온 그는 '늦깎이' 스타 탄생을 예고한다. 오윤석은 차분한 목소리로 "육성 선수로 입단하면서부터 항상 도전자 신분으로 훈련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루하루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이를 통해 롯데의 주전 선수가 되는 게 목표다"라며 "기록 달성으로 느낀 환희는 가라앉히고, 평소처럼 하루하루 준비해 나가겠다"라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