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세(43)는 '마성의 배우'로 불린다. 그만큼 연기에 있어서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어떤 배역을 소화하든 극의 몰입도를 한층 올리니 제작진은 물론 시청자들 사이에선 '이름값을 배신하지 않는 배우'로 통한다. 연기에 대한 칭찬은 그가 드라마 판에서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을 때부터 주변 배우들로 하여금 나오던 이야기다. 한 번 호흡을 맞춘 배우들은 오정세의 매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인성과 연기력을 갖추고 있으니 누가 그를 마다할까. 56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남자 조연상 수상자로 다시 만난 오정세. 단란한 분위기 속 수다의 장을 열었다. 조용조용하지만 그 안에 재치가 숨겨져 있었다. 단단한 내공이 느껴졌다. 그리고 또 하나의 특징이 있었다. 한 번 무엇인가를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24년 동안 다른 길을 보지 않고 한 길만 팔 수 있었던 것. 지금의 성공은 한눈팔지 않고 오로지 한 길만 보고 달려온 그에게 주어진 노력의 대가였다.
1편에 이어...
-처음에 '사이코지만' 제안받고 도전 자체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하고 싶은데 겁이 났죠. 1차원적으로 어떻게 표현할까, 이렇게 표현하는 게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고 기분 나쁘지 않을까. 희화화되거나 기존에 있었던 캐릭터와 똑같이 표현되거나 하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준비하는 과정 자체도 조심스러웠고 할 때도 조심스러웠어요. 정서적으로 다가가기 위해 노력했어요. 개인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어 그저 다행스러워요."
-언제쯤 상태와 하나가 됐나요. "제가 서점에서 발작하면 재킷으로 수현이가 덮어주는 신이 있었어요. 수현이와 초반에 존댓말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형제 케미스트리가 그때 좀 많이 완성된 것 같아요. 재킷 덮어주면서 '괜찮아' 그러는데 그 안에서 감정이 터지더라고요. 재킷을 덮어주자 마자 눈물이 막 나오면서 편해지고, 동생이지만 형 같은 느낌이 캐릭터적으로 많이 붙은 것 같아요. 카메라에 안 담겨도 배우로서는 엄청난 재산이었어요. 그때 확 감정이 붙어서 상태를 연기하기가 훨씬 편해졌어요."
-가족들도 본방사수를 했겠어요. "우리 식구들은 동 시간대 방송하는 JTBC '아는 형님'을 봤죠. 아이들이 좋아하거든요. 저는 안방에 있는 작은 TV로 모니터를 했어요."
-김수현·서예지 씨와 호흡은 어땠나요. "사실 전 눈물을 잘 흘리는 배우가 아니에요. 근데 수현이나 예지를 보면 감정이 훅 올라왔어요. 그래서 좋았어요. 수현이를 보면 웃고 있어도 무언가 뜨거운 게 올라왔거든요. 연기하러 갈 때 무기가 있는 느낌이었어요."
-넷플릭스로 동시 방영돼 해외 팬도 늘지 않았나요.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요.(웃음) 전 세계 어딘가에 혹은 대륙에 한 명씩은 있지 않을까 싶네요."
-오늘은 집에서 왔나요. "운동 치료하고 왔어요. '지리산' 촬영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체력을 키우고 있어요. 평소엔 운동을 잘 안 하는데 챙겨서 하고 있죠."
-쉴 때 주로 무엇을 하나요. "아직 취미가 없어요. 집에 그냥 있었죠. 여행을 가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못 돌아다니는 상황이기도 해서. 시나리오 좀 보면서 집에 있으면 하루가 금방 가요."
-취미를 하나 만들면 좋을 것 같아요. "아참, 전시회나 콘서트 가는 걸 좋아해요. 요즘 코로나19 때문에 못 가고 있는데, 보는 것 자체를 하나의 여행이라고 생각하고 가는 것 같아요. '저 전시회엔 무엇이 있을까?' '저 작가는 누구일까?' 그렇게 갔다가 신세계를 보기도 하고 그냥 올 때도 있고. 음악도 마찬가지예요."
-'동백꽃'에 대해 지금까지 해온 작품 중 잊지 못할 작품이라고 표현했다고요. "기본적으로 책이 재밌었어요. 보통 보면 중간에 '응?' 이럴 때가 있는데 배우들은 물론이고 스타일리스트·매니저 모두 다음 대본이 언제 나오냐고 기다렸어요. 책의 힘으로 많이 간 것 같아요. 작품이 전달해주는 메시지 역시 정확해서 좋았어요.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찍으면서 갈등이 있을 수 있는데 다들 한 마음으로 즐겁게 촬영했어요. 현장 가는 게 너무 즐거웠어요. 솔직히 포항이 서울에서 가까운 거리는 아닌데 자기 역할을 떠나 다들 그런 마음이었을 거예요."
-임상춘 작가님의 대본을 두고 찬사의 연속이었죠. "제 목표가 99.9% 대본대로 연기하는 거였어요. 텍스트가 있는데 이렇게 바꿔야지가 아니라 입에 잘 안 맞는 대사가 있더라도 작가님의 의도가 있겠지 하고 똑같이 하려고 했어요. 임상춘 작가님과 또 작품 하고 싶어요. 47번째 역할이어도 괜찮아요."
-요즘은 길을 다니면 주위에서 너무 잘 알아보겠어요. "그렇지 않아요. '동백꽃' 이후 작년 말 팬카페 회장과 초청받은 한 영화 시사회에 가서 당한 일이 있어요. 배우들 동선 체크해주는 가드에게 가니 '일반 관객은 저기로 가셔야 하는데요' 그러더라고요. 전 그런 걸 많이 당해봐서 괜찮은데 팬카페 회장은 멘털이 나갔어요. (이런 반응에) 적응하라고 했죠.(웃음) '동백꽃' 마지막 회차 촬영 때도 현장에서 쫓겨났어요. 촬영이 없어서 매니저랑 근처 구경을 하다가 갔는데 제작부가 촬영 중이라고 막더라고요."
-이런 일화가 또 있나요. "부산국제영화제의 경우 굉장히 큰 행사잖아요. 지난 2008년 임하룡 선배님과 조은지 배우랑 같이 간 적이 있어요. 레드카펫도 생중계가 되는 상황이었는데 사회자분이 배우 한 명씩 소개하다가 제 차례가 되니 그냥 '입장하십니다' 이러더라고요. 못 알아본 거죠. 그 순간 레드카펫이 엄청 길어 보였어요. 내가 여기서 인상을 써야 하나, 웃어도 바보 같지 않나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나 난감했어요. 그런 것도 긍정적인 편이라 '재밌는 에피소드가 생겼네!' 그랬어요."
〉〉3편에 계속
황소영 기자 hwang.soyoung@jtbc.co.kr 사진=박세완 기자 영상=박찬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