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제를 거부한 여성이 사는 아파트에 찾아가 사제 폭발물을 터뜨린 20대는 범행 일주일 전 피해 여성의 집이 있는 전북 전주에서 원룸을 구한 뒤 취직까지 한 것으로 파악됐다.
19일 전주 덕진경찰서 등에 따르면 폭발물 사용 혐의로 입건된 A씨(27)는 전주 모 배달업체에서 일하며 범행을 준비했다. 그는 지난 17일 오후 8시5분쯤 전주시 덕진구 만성동 한 아파트 3층 계단에서 자신이 직접 만든 사제 폭발물을 터뜨린 혐의다. A씨는 전북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부모와 함께 살다 범행 일주일 전쯤 전주에 온 뒤 일자리를 구했다.
조사 결과 A씨는 범행 전날인 지난 16일에는 피해 여성에게 "나와 사귀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는 취지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이후 그는 이튿날 피해 여성의 집을 찾았다가 그와 마주친 가족이 "(피해 여성은) 집에 없다"고 하자 아파트 계단에 올라가 손에 들고 있던 폭발물 심지에 불을 붙였다.
A씨는 학창시절부터 알던 피해 여성을 3년 전에도 집요하게 쫓아다니며 만남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당시 피해 여성 아버지가 A씨를 만나 "교제는 안 된다"고 말린 뒤로는 연락이 끊겼다. 경찰은 범행 며칠 전에도 A씨가 피해 여성 아버지를 찾아가 "딸과 만나게 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거절당하자 범행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A씨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폭발물 제조 방법을 익히고 폭발물 재료를 구입한 사실을 바탕으로 계획범죄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하지만 피해 여성을 살해하거나 누군가에게 위해를 가할 의도는 없었다고 보고 있다. A씨가 폭발물을 피해 여성 집 앞에 두거나 누군가를 향해 던지는 등의 행위는 하지 않아서다.
A씨는 폭발 당시 왼손을 크게 다쳐 병원에 입원했다. 얼굴 쪽도 화상을 입어 붕대를 감은 상태다.
경찰은 A씨 집에서 압수한 폭발물 재료와 현장에서 수거한 폭발물 잔해 등을 경찰특공대 폭발물 처리 부서에 정밀 감식을 맡겼다. 아울러 A씨 휴대전화에 대한 포렌식 분석을 통해 그가 피해 여성의 집 주소를 어떻게 찾았는지 등을 조사할 예정이다. 김영근 덕진경찰서 형사과장은 "A씨가 완치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1~2주 뒤면 경찰 조사가 가능할 것"이라며 "치료 후 정확한 범행 동기나 과정 등을 조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성폭력 상담 전문가들은 A씨의 범행을 "여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전제한 스토킹 범죄"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스토킹(stalking)은 타인의 의사에 반해 다양한 방법으로 공포와 불안을 반복적으로 주는 행위를 말한다.
황지영 전주시 인권옹호관(전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공동대표)은 "폭발물 사용은 흔치 않은 경우지만 '내가 원하는 것을 주지 않을 때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감정을 드러냄으로써 상대방과 그 가족에게 공포심과 불안을 준다는 점에서 스토킹 범죄에 해당한다"며 "이런 가해자의 감정을 '짝사랑'이라고 표현하는 것 자체가 범죄를 미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