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데뷔 후 첫 타석. 긴장과 부담을 크게 느낄 법했지만, LG 홍창기(27)는 너무나 침착했다.
LG는 지난 2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키움과의 와일드카드 결정전(WC)에서 연장 13회 접전 끝에 4-3으로 승리, 준플레이오프(준PO) 무대에 올랐다. 이날 경기 최우수선수(MVP)로는 13회 말 2사 만루에서 끝내기 안타를 친 '대주자 전문' 신민재가 뽑혔다. 홍창기는 숨은 MVP로 손색없을 만큼 감초 역할을 톡톡히 했다.
홍창기는 WC 1차전에서 안타를 때리지 못했다. 그러나 7타석 가운데 4사구로 3차례 출루하며 동점과 결승점의 발판을 마련했다.
LG는 1-2로 뒤진 7회 말 1사 만루에서 대타 박용택이 삼진으로 물러났다. 하지만 후속 홍창기는 안우진과의 승부에서 6구째 볼을 골라내 3루 주자 오지환을 불러들였다. 이 상황에서 무득점에 그쳤다면, LG로선 상당한 부담을 느꼈을 것이었다. 그러나 홍창기가 침착하게 볼넷을 얻어 스코어의 균형을 맞췄다.
연장 13회도 마찬가지였다. 3-3으로 맞선 2사 1·3루에서 김태훈의 4구째 원바운드 커브를 골랐다. 이때 폭투가 나왔고, 1루 주자 이천웅이 2루로 진루했다. 볼카운트가 불리해지자 키움은 홍창기와 무리하게 대결하는 대신, 자동 고의4구 작전을 선택했다. 만루 찬스를 잡은 LG는 신민재의 끝내기 안타로 드라마 같은 승리를 거뒀다. 홍창기는 6회 볼넷을 포함해 이날 4사구 3개를 얻어 정규시즌 때 보여준 '출루 머신'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의 진가는 타석당 투구 수에서 여실히 알 수 있다. 이날 총 7타석에서 상대 투수에게 36개의 공을 던지게 했다. 타석당 투구 수는 5.14개였다. 올해 리그 전체 정규시즌 타석당 투구 수(3.92개)를 훨씬 상회한다.
홍창기는 '눈 야구'를 한다. 올해 정규시즌 타석당 투구 수가 4.37개로 KT 조용호(4.46개)에 이어 전체 2위였다. 시즌 타율은 0.279로 38위였지만, 출루율은 0.411로 6위에 올랐다. 그만큼 공을 잘 본다. 자기만의 스트라이크존을 설정해, 이를 벗어나면 좀처럼 배트를 휘두르지 않는다. 그는 "어릴 적부터 볼넷과 출루율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좋아했다"고 한다.
2016년 LG 2차 3라운드로 입단해 지난해까지 38타석 소화가 전부였던 그는 높은 출루율을 앞세워 이천웅의 부상 공백을 메웠다. 그리고 단번에 리드오프를 꿰찼다.
올 시즌 개막 전 목표는 1군 백업이었다. LG 외야진은 김현수-채은성-이천웅-이형종 등 쟁쟁한 선수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홍창기는 경험을 쌓으면서 출루율은 물론, 타격 정확도까지 높이며 커리어하이 시즌(타율 0.279, 5홈런, 39타점, 87득점, 11도루)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