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외국인 투수 크리스 플렉센은 지난 4일 열린 LG와의 준플레이오프(PO) 1차전 6회 초 2사 1루에서 타자 로베르토 라모스를 삼진으로 잡고 크게 포효했다. 마운드를 내려오며 1루 쪽 홈 관중석을 향해 두 팔을 들어 함성을 유도했다. '순둥이' 같은 플렉센의 격양된 모습에 두산 팬들은 열광했다. 팀 동료 김재호도 그 모습을 응시한 뒤 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플렉센은 이 경기에서 6이닝 무실점으로 호투, 두산의 4-0 승리를 이끌었다.
경기 후 플렉센은 자신의 낯선 모습을 돌아봤다. 민망한 표정을 지은 그는 "중요한 순간을 잘 이겨냈기 때문에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동료의 사기를 북돋우고 싶었고, 추운 날 열정적으로 응원해주는 팬에게 에너지를 돌려드리고 싶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경기는 플렉센의 커리어 첫 포스트시즌이었다. 정규시즌과 비교할 수 없는 뜨거운 열기를 그는 뿜어냈다.
세리머니는 기세 싸움이다. 두산 외국인 타자 호세 미구엘 페르난데스는 준PO 1차전 1회 말 타석에서 LG 투수 이민호에게 우월 투런 홈런을 친 뒤 배트를 패대기치는 격한 배트 플립을 보여줬다. 오재원도 4회 추가 득점을 이끄는 우중간 적시 2루타를 친 뒤 배트를 집어 던졌다. 경기 뒤 그는 "홈런인 줄 알았다"며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자신의 퍼포먼스가 동료들과 팬들의 심장을 뜨겁게 한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다.
LG 로베르토 라모스는 준PO 2차전, 0-8로 지고 있던 4회 말 두산 선발투수 라울 알칸타라로부터 우월 솔로 홈런을 쳤다. 팀이 크게 지고 있는 만큼, 그는 더 요란한 제스처를 선보였다. 허공을 향해 고함을 질렀고, 더그아웃으로 들어가서는 양팔을 들고 허리를 흔들었다.
가을 퍼포먼스가 진화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5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던 두산이 트렌드를 만들고 있다. 지난해 두산 주장 오재원은 상금 10만원들 내걸며 동료들에게 참신한 동작을 공모했다. 백업 내야수 서예일이 아이디어를 낸 '셀카(셀프 카메라)' 세리머니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공식 세리머니로 선정됐다.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 두산 선수들은 좋은 플레이를 할 때마다 셀카를 찍는 동작을 취했다. 오재원은 "즐거운 추억을 인증샷으로 남기자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팀도 팀 세리머니는 있다. LG는 더그아웃을 향해 양손을 흔드는 '안녕 세리머니', NC는 주먹을 쥐고 심장을 두들기는 '박동 세리머니'를 한다. 키움은 손가락으로 팀 이니셜을 만들어 흔든다.
올해 포스트시즌에서도 세리머니 대결이 뜨거울 전망이다. KT 주장 유한준도 두산의 '세리머니 공모전'을 벤치마킹해 시행했다. KT는 창단 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해 PO를 치르고 있다. 포스트시즌 경험이 많은 유한준은 젊은 선수들이 2020년 가을을 즐길 수 있도록 유도했다. 두산처럼 가을야구 세리머니를 만들기 위해 후배들에게 아이디어를 구했다. 두둑한 상금도 걸었다.
PO 1차전을 앞두고 유한준은 "아무래도 창작의 고통이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상금을 마련했다"고 웃으며 "많은 아이디어가 왔다. 야구장에서 선보이겠다. KT 선수단은 포스트시즌을 즐길 준비가 됐다"고 말했다. 정규시즌에서 KT는 열 손가락을 모두 펴 X로 교차시키는 '비상 세리머니'를 했다. 올가을에는 더 특별한 동작을 준비 했고, 9일 열린 PO 1차전에서 선보였다. 안타를 친 타자들이 모두 오른쪽 귀에 댄 오른손에 떨림을 주는 동작을 취했다. 마치 무언가와 교감이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클라이맥스는 우승 뒤풀이가 될 것이다. 챔피언 세리머니는 야구 역사에 두고두고 남는다. 삼성은 2013년 한국시리즈 우승 뒤 모든 선수가 마운드로 모여 허공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는 '볼트 세리머니'를 연출했다. 이듬해도 마운드 위에서 선수들이 '4연속' 우승을 기념하며 네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리그 최강팀이라는 자부심을 담은 모습이었다.
두산도 2016시즌 통합 우승 순간, 팀 투수 유희관이 아이언맨 복장으로 등장했다. 올 시즌도 어떤 팀이 어떤 마지막을 장식할까. 선수와 선수, 그리고 선수와 팬의 에너지를 잇는 세리머니에 2020년 가을 야구의 코드가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