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롯데·신세계·현대 등 주요 유통 그룹이 강도 높은 '인적 쇄신'에 나섰다. 내년 사업계획 수립에 대한 시간을 벌기 위해 예년보다 인사 시기를 한 달가량 앞당긴 것은 물론, 젊은 인재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업계는 이번 유통그룹의 임원 인사 키워드로 '세대교체'와 '슬림화'를 통한 '체질개선'을 꼽았다.
'칼바람' 분 롯데, 임원 100여명 짐 싸
29일 재계에 따르면 롯데그룹은 지난 26일 단행한 정기인사에서 50대 초반의 젊은 임원들을 대표이사로 대거 등용했다.
시장의 수요를 빠르게 파악하고, 신성장동력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낼 수 있는 젊은 경영자를 전진 배치해 위기를 타개하겠다는 신동빈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롯데칠성음료의 신임 대표이사는 50세의 박윤기 경영전략부문장이 전무로 승진, 내정됐다. 롯데네슬레 대표이사였던 강성현 전무도 50세로 롯데마트 사업부장을 맡게 됐다.
롯데푸드 대표이사에는 롯데미래전략연구소장을 역임한 51세 이진성 부사장이, 롯데케미칼 기초소재 대표이사에는 LC USA 대표이사였던 52세 황진구 부사장이 승진 내정됐다.
롯데그룹은 이번 정기인사에서 50명의 신규 임원을 낸 것에 반해 총 133명의 임원을 퇴임시켰다. 전체 임원 600여 명의 약 20%에 달한다. 이중 유통BU에서 옷을 벗은 임원 수만 49명에 달한다.
아울러 임원 직급단계도 기존 6단계에서 5단계로 축소하고, 직급별 승진 연한도 축소 또는 폐지했다. 신임 임원이 사장으로 승진하기까지는 기존 13년이 걸렸지만, 이번 직제 개편을 통해 최대 8년까지 단축됐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젊고 우수한 인재들을 조기에 CEO로 적극적으로 배치하기 위한 조치"라며 "임원인사는 혁신을 가속하기 위한 대대적인 인적 쇄신과 임원 직제 슬림화가 특징"이라고 전했다.
반면 임기가 만료된 강희태 롯데쇼핑 대표이사 부회장은 연임에 성공하면서 힘이 실린 모양새다. 롯데쇼핑의 5개 사업부 중에서는 유일하게 마트사업부장만이 교체됐다.
신세계·현대도 인적 쇄신…조기 인사 단행
앞서 정기 인사를 단행한 다른 유통 기업들 역시 임원 수 감축 혹은 보다 젊은 CEO 전진배치에 나섰다.
신세계그룹 이마트 부문은 지난달 15일 임원인사를 단행했다. 작년보다도 약 1주일가량 앞당긴 인사에서는 11개 계열사 중 6개 계열사를 교체했다. 100명이 넘던 임원 수도 10%가량 줄였다.
특히 51세인 강희석 이마트 대표가 쓱닷컴 대표를 겸직하는 등 온‧오프라인 통합에 초점이 맞춰졌다.
강 대표는 컨설팅업체 베인앤드컴퍼니의 소비재·유통 부문 파트너 출신으로 작년 이마트 대표로 선임됐다. 창사 이래 첫 외부 출신 CEO(최고경영자)로, 지난 1년간 이마트의 수익성을 개선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신세계푸드를 이끌게 된 송현석 대표와 신세계 I&C 손정현 신임 대표도 1968년생으로 강 대표와 연배가 비슷한 50대 임원들이다.
이마트의 이런 인사는 젊은 경영진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내달 초에는 신세계그룹 백화점 부문 정기인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이마트와 마찬가지로 경영성과 창출 및 전문성 강화에 방점이 찍힐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난 6일 인사를 단행한 현대백화점그룹도 예년보다 약 한 달 정도 인사를 앞당겼다. 총 29명이 승진했고, 19명이 자리를 옮겨 총 48명에 대한 인사가 이뤄졌다.
롯데와 신세계 이마트보다는 임원 감소 폭이 가장 적었지만, 새롭게 선임된 대표이사급의 임원은 모두 50대였다.
현대백화점그룹은 현대홈쇼핑 대표이사 사장에 50대인 임대규 현대홈쇼핑 영업본부장(부사장, 1961년생)을 선임했다. 새롭게 현대L&C 대표이사 부사장에 임명된 김관수 상무는 57세다. 이어 현대백화점면세점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임명된 이재실 현대백화점 판교점장(전무이사) 역시 58세로 모두 50대 임원이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유통가가 불확실성을 줄이고 변화된 소비 환경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대대적인 인적 쇄신에 나서고 있다"며 "유통가에 만연했던 순혈주의에서 탈피해 외부인사를 적극 등용하고, 젊은 CEO도 전진 배치하며 혁신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