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1 강원FC의 대표이사로 내정된 이영표. 중앙포토 "월드컵은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다. 증명하는 자리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대표팀이 16강 진출에 실패하자, 당시 KBS 해설위원이었던 이영표(43)가 한 말이다. 월드컵이라는 무대에서 경험을 쌓는 데 그치지 말고, 결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그의 발언은 대중의 뜨거운 공감을 얻었다.
이 말은 이제 감독이나 코치가 아닌 행정가로서 K리그에 다시 발을 내딛게 된 이영표 본인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어록'이 됐다. 강원도는 강원FC 새 대표이사로 이영표 대한축구협회 축구사랑나눔재단 이사를 내정했다고 지난 8일 밝혔다. 박종완 현 대표가 올해 말 퇴임할 예정이라 새 대표 선임을 위해 움직여왔던 강원이 '이영표 카드'를 내놓았다. 강원도 관계자에 따르면 이영표 내정자는 구단의 요청을 수락했으며, 오는 22일 구단 이사회를 통해 대표이사 선임이 마무리될 예정이다.
화려한 선수 생활을 마치고, 은퇴 후 방송 등을 통해 활발히 활동 중인 이영표가 K리그1 강원의 대표이사로 돌아온다는 소식은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보통 은퇴 후 K리그에 돌아오는 스타들은 사령탑의 위치에서 제2의 축구인생을 시작한다. 홍명보 대한축구협회 전무도 대표팀 감독을 거쳐 현재 축구 행정가로 일하고 있지만, K리그 구단 대표이사를 맡은 건 이영표가 처음이다.
이전부터 이영표는 꾸준히 자신의 미래가 '축구 행정가'에 있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선수 시절부터 '시스템'에 대한 고민과 함께 행정가에 대한 관심을 보였다. 이를 위해 이영표는 선수 은퇴 전 마지막 무대를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로 선택했다. 밴쿠버 화이트캡스에서 뛰며 영어를 배웠고, 북미 프로스포츠의 구단 운영 노하우도 경험했다.
우려의 시선도 있다. '초보 대표이사'가 구단을 얼마나 성공적으로 경영할 수 있을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대표이사는 감독 및 선수단과 프런트가 협력할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언제라도 찾아올 수 있는 위기에 대응하고, 어떤 변화에도 팀이 흔들리지 않도록 기둥을 세워줘야 하는 막중한 책임이 요구되는 자리다. 축구를 잘 알아야 하지만, 축구에 지나치게 개입해서도 안 된다.
그래도 축구인, 그것도 한국 축구 레전드 출신인 이영표의 대표이사 부임은 K리그의 활력소가 된다는 게 축구계의 기대다. 축구인 출신 행정가가 드문 K리그에서 이영표의 행보는 앞으로 많은 선수에게 지향점이 될 수 있다. 더구나 이영표는 강원도 홍천 출신으로, 강원도가 배출한 역대 최고의 축구 스타 중 한 명이다. 강원의 지휘봉을 잡고 있는 김병수 감독과도 고향 선후배 사이다.
이번 인사는 강원과 이영표 모두 만족할 만한 선택이라는 것이 주된 평가다. 그리고 축구 행정가로서, K리그 대표이사 취임을 앞둔 이영표는 이제 자신이 한 말처럼 '경험'이 아닌 '증명'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