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민과 남주혁의 겨울 멜로가 찾아온다. 코로나19 한파로 얼어붙은 극장가에 도전장을 낸 '조제'다.
'조제'는 익히 알려졌듯 이누도 잇신 감독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2004)과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최악의 하루' '더 테이블' 등을 연출하며 마니아를 만들어낸 김종관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서 호흡을 맞췄던 한지민과 남주혁이 브라운관이 아닌 스크린에서 재회해 화제를 모은 작품. 한지민이 자신만의 세계에 사는 여자 조제를 연기한다. 조제는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집, 그 안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짓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우연히 영석의 도움을 받게 되고 그날 이후 때때로 집을 찾아오는 영석을 보며 굳게 닫혀 있던 조제의 세계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남주혁은 조제의 세계에 들어온 남자 영석 역을 맡았다. 청춘을 낭비하는 대학생 영석은 우연히 마주한 조제의 세계에 자신도 모르게 푹 빠져든다. 연말까지 3주간 수도권 지역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된다. 9시 이후로 극장 문을 열 수 없다. 12월 개봉을 계획했던 경쟁작이 모두 수를 물렀다. '조제'는 10일 개봉을 강행한다. 악조건 속에서 피어난 멜로가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형만 한 아우는 되지 못한 '조제'
출연: 한지민·남주혁
감독: 김종관
장르: 멜로·드라마
줄거리: 처음 만난 그날부터 잊을 수 없는 이름 조제와 영석이 함께한 가장 빛나는 순간을 그린 이야기
등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117분
한줄평: 미소국이 번데기탕으로 바뀌며 사라진 울림
별점 ●●○○○
신의 한 수: 2004년 단편 영화 '폴라로이드 작동법'으로 단숨에 주목받으며 다수의 영화제에서 트로피를 휩쓴 김종관 감독은 이후 오랫동안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왔다. '최악의 하루'와 '더 테이블' 등 최근 작품은 물론 여러 감독과 협업한 넷플릭스 옴니버스 영화 '페르소나' 등을 통해 김종관만의 연출 스타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조제' 역시 김종관 감독의 작품답게 아름다운 미장센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낡아 보이지만 흥미로운 조제의 공간은 마치 빈티지 가게에 들어가는 것만 같은 분위기를 낸다. 두 사람이 거니는 거리의 꽃잎 하나 하나가 특별하게 휘날린다. '조제'는 김 감독이 꼼꼼하게 붓으로 그리고 물감을 말린 후 액자에 정성스럽게 간직한 작품 같다. '눈이 부시게'를 기점으로 눈이 부시게 성장하고 있는 남주혁의 연기도 눈길을 끈다. 내내 동화 속 주인공 같은 조제 옆에서 때론 현실감 넘치는 인물이 되어야 하는 영석이기에 남주혁은 그 경계를 잘 넘나든다. 평범함을 연기하고 싶었다는 그의 목표처럼 체크무늬 셔츠를 입은 모습이 '조제'의 세계에 잘 어우러진다.
신의 악수: 어쩌면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리메이크하지 말았어야 할 작품일지 모른다. 일본 문화가 널리 퍼져 있지 않았을 때였음에도 많은 한국 관객이 이 영화를 사랑했다. 여전히 이 영화를 보고 있고, 또 기억한다. 때문에 '조제'는 원작과 비교를 피할 수 없다. 결론적으로 '조제'는 원작 팬이라면 만족하지 못할 영화다. 영석이 먹는 미소국이 번데기탕으로 바뀌면서, 원작의 매력까지 쏙 빠져버렸다. 일본영화 특유의 독특한 감성은 뺀 채 이야기만 그대로 가지고 왔다. 유모차를 탄 장애인 조제와 도박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츠네오가 아니라, 휠체어를 탄 조제와 취업 준비생 영석이다. 관객을 사로잡았던 독특한 꾸밈을 벗겨내니 마음이 잘 가지 않는다. 사건은 같은데 캐릭터의 성격이 조금씩 달라지다보니, 인물의 행동에도 개연성이 부족하다. 마치 관객을 따돌리는 듯이 조제와 영석 둘만 아는 사랑 이야기를 속삭이는 것 같다. 한지민과 남주혁이 캐스팅되면서 연상연하 설정으로 바뀐 것 또한 실패 요소다. 비슷한 연령대의 두 주인공이 등장, 어두운 소재임에도 통통 튀는 청춘의 색채를 띄었던 원작과는 달리 '조제'는 깊고 어둡다. 제목에서 제외시킨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소재를 활용한 방식 또한 긴 여운을 남겼던 원작과 비교해 만족스럽지 못하다. 취업 준비생 영석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의 사회적 문제를 짚어보려 했으나, 크게 돋보이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