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프로야구 선수 이택근(40)은 최근 KBO에 ‘키움 히어로즈 구단과 관계자에 관한 품위손상 징계 요구서’를 제출했다. 발단은 지난해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허민(44) 키움 히어로즈 이사회 의장의 이른바 ‘야구놀이’가 발단이다.
허 의장은 당시 키움 2군 훈련장인 고양 야구국가대표 훈련장에서 일부 선수를 타석에 세워놓고 공을 던졌다. 야구 유니폼을 갖춰 입고 모자까지 쓴 채 전력투구했다. 키움 구단은 “허 의장은 2군 구장 현황을 살펴보러 방문했을 뿐이다.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즉흥적으로 벌어진 일”이라고 해명했다.
문제는 그 후다. 구단은 대외적으로 사과 제스처를 취한 뒤 구장 CCTV 영상을 확인했다. 이택근의 한 팬이 영상을 찍은 걸 알아냈다. 이택근은 징계 요구서에 “구단은 불법적으로 설치한 자체 CCTV로 야구팬을 사찰했고, 나를 불러 그 팬의 영상 제보 여부와 그 배후를 말하라고 강요했다”고 썼다.
언론을 통해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키움은 9일 오후 5시 보도자료를 냈다. 키움은 “이택근이 두 차례에 걸쳐 구단에 내용증명을 보내 CCTV 사찰, 부당한 지시 등에 관한 공개사과를 요구했다. 그러나 구단이 CCTV를 확인한 이유는 보안 점검 차원이었다. 일반인 출입금지 구역에서 영상을 촬영한 거로 여겼다. 확인 후 촬영자에게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로부터 3시간 뒤, 김치현 키움 단장 목소리가 담긴 녹취가 공개됐다. 김 단장은 지난해 6월 이택근에게 “(촬영자가) 너의 팬이라서 (허민) 의장님은 화가 많이 나셨다. ‘명예 훼손’으로 경찰 조사를 요청하겠다고 한다”고 말했다. 김 단장은 허 의장 최측근인 하송 대표이사가 취임한 지난해 11월 다시 이택근을 불렀다. 김 단장은 “(하 대표가) 혹시 (배후를) 확인해줄 수 있냐고 개인적으로 부탁하신다. (하 대표가) 의장님을 모시지 않나. 네 개인 팬이니까 충분히 너를 위해 말해줄 수 있을 거 같다”며 설득을 시도했다. 키움의 ‘공식 입장’과 상반된 증거다.
보도자료 속 다른 내용도 석연치 않다. 키움은 “이택근이 시즌 초 김 단장에게 코치직을 요구했다. 10월에는 대리인을 통해 유학비 지원을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이택근은 반박했다. “키움의 현 시스템 속에서 코치 할 생각은 애초 없었다. 오히려 구단이 내게 코치직을 제안해 명분을 찾으려 할까 봐 그러지 않기만을 바랐다. 다행히 코치 제의는 없었다”고 반박했다. 유학비 지원 요구에 대해서는 “코로나19 시국이다. 유학 갔던 사람도 귀국하는 마당에, 갑자기 왜 유학을 가겠냐”며 코웃음을 쳤다. “은퇴식 제안을 선수가 뿌리쳤다”는 구단 주장에 대해 이택근은 “그건 사실이다. 하지만 ‘은퇴식 다음 스텝은 뭐냐’고 물으니 ‘그게 끝’이라고 해서 ‘안 열어줘도 된다’고 하고 팀을 나왔다”고 설명했다.
이쯤에서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이 진실 공방의 본질은 ‘키움이 제보자를 찾아내기 위해 CCTV를 확인했는지, 그 영상을 언론에 보낸 배후를 캐내기 위해 선수에게 부당한 요구를 했는지’ 여부다. 이택근이 은퇴하면서 키움에 어떤 요구를 했는지는 본질이 아니다. 그런데도 키움이 이 부분을 부각하는 건 ‘구단이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자 보복을 위해 1년 6개월 전 일을 이슈화한다’는 프레임을 씌우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전형적인 논점 흐리기다.
이택근은 목소리를 높였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거짓말이다. 행여 그게 사실이라 해도, 이게 CCTV 사건과 무슨 관계인가. 구단이 CCTV로 팬을 사찰했고, 선수에게 ‘그 배후를 공개하라’고 무리하게 요구했다. 내가 문제 삼고 싶은 건 그것뿐”이라고 강조했다.
키움은 또다시 구단 명의 보도자료로 거짓말을 하다 들켰다. 그러자 다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침묵을 택했다. 상황이 불리해지면 입부터 다물고, 사태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는 게 ‘키움식’ 해결책이다. 눈치 볼 모기업이 없어서 그렇다. 허 의장만 “괜찮다”고 하면 정말 다 괜찮다고 믿는 팀이 키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