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년 한국GM 노조 파업으로 가동 멈춘 인천 부평공장. 연합뉴스 현대·기아차를 제외한 나머지 외국계 완성차 3사(르노삼성·한국GM·쌍용차)가 깊은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2020년을 관통한 코로나19 사태로 한국 시장에서의 영향력은 물론 생산 물량마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시장 점유율도 곤두박질치고 있다. 급기야 외국계 본사의 한국 철수설이 흘러나오고, 구조조정에 돌입한 회사까지 등장했다. 3사의 올해 최대 과제는 '생존'이 될 전망이다.
점유율 더 높아진 현대·기아차
17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르노삼성·한국GM·쌍용차 3사는 압도적인 영향력을 가진 현대·기아차에 밀려 존재감을 잃고 있다.
국내 등록된 승용차 기준 통계를 살펴보면 지난해 현대·기아차의 합산 내수 점유율은 83.4%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같은 기간 82.3%와 비교해 1.1%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지난해 각각 78만7854대, 74만1842대씩을 팔았다. 내수 점유율은 각각 49%, 48.4%다. 이 기간 국내 완성차 5개사는 총 160만7035대를 판매했다.
주목할 점은 최근 3년간 현대, 기아차의 내수 점유율이다. 2018년 81.0%, 2019년 82.3%, 2020년 83.4%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사실상 국내 시장을 장악한 상태다.
반면 마이너 3사의 내수 점유율은 5% 내외다. 9만5939대를 판매한 르노삼성이 약 6%, 8만7888대의 실적을 올린 쌍용차가 약 5.5%, 8만2954대를 판 한국GM이 약 5.2% 수준이다.
이에 따라 2010년 내수 판매량 기준 22.98%에 달했던 3사의 점유율은 지난해 16.6%까지 떨어졌다. 2010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현대·기아차의 압도적인 생산 규모 및 신차 출시, 마이너 3사의 경쟁력 약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마이너 3사의 수출 실적은 더욱 참담하다. 한국GM은 지난해 24만8041대를 수출해 전년 대비 20.2% 하락했다. 르노삼성차는 같은 기간 1만9222대를 기록, 77.0% 뒷걸음질 쳤다. 쌍용차도 30.7% 하락한 1만7386대를 판매한 데 그쳤다.
쌍용차 평택공장 전경. 쌍용차 제공
새 주인 찾기 나선 쌍용차, 구조조정 르노삼성
실적 악화에 마이너 3사는 불안한 새해를 보내고 있다.
먼저 쌍용차는 최근 유동성 위기에 처해 결국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쌍용차가 법원에 기업회생을 신청한 건 2009년 이후 11년 만이다.
쌍용차는 무사히 살아남기 위해 대주주인 인도 마힌드라를 대신할 '새 투자자'를 찾아야 하는 처지다. 일단 쌍용차는 지난달 법원에 회생절차개시 및 자율 구조조정 지원(ARS) 프로그램을 신청해 오는 2월 28일까지 시간을 벌었다.
새 투자자 윤곽은 이달 안으로 드러날 전망이다. 파완 고엔카 마힌드라 사장은 지난 1일 화상 기자회견에서 "쌍용차 지분을 두고 잠재적 투자자와 협상 중"이라며 "우리는 다음 주에 주요 거래 조건서를 끝내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협상 대상은 미국계 자동차 유통업체인 HAAH오토모티브홀딩스(이하 HAAH)가 유력하다. HAAH와의 계약이 성사되면 마힌드라는 쌍용차 지분을 현재 75%에서 30% 이하로 낮춰 대주주 지위를 내려놓을 계획이다.
다만 HAAH가 연 매출 250억원 규모의 소규모 회사인 점을 고려하면 인수자금 동원 능력이나 이후 투자 계획 등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은 크다.
업계는 쌍용차가 HAAH오토모티브홀딩스와 협상이 무산돼 법정관리에 들어갈 경우, 청산을 피하기 위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르노삼성차 부산공장. 르노삼성 제공 르노삼성차는 저조한 내수 실적에 더해 수출 부진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닛산 로그 수탁생산 계약이 지난해 종료되면서 연간 10만대가량의 물량이 줄어든 탓이다. 르노삼성은 지난해 영업손실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도 어려움은 이어질 전망이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XM3의 유럽 판매 물량을 따냈지만, 규모는 연 5만대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업계 관계자는 “르노삼성은 비용을 대폭 줄이지 못하면 생존을 우려해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급기야 르노삼성은 새해 벽두부터 선제적으로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전체 임원을 절반 가까이 줄이고, 임원 임금을 40% 삭감키로 했다.
르노삼성 관계자는 “임원 감축 및 임금 삭감을 시작으로 고정비를 줄이는 작업을 계속할 계획"이라며 "사실상 비상경영체제에 들어간 것이다”고 설명했다.
인천시 부평구 한국GM 부평공장. 연합뉴스 한국GM도 7년 연속 적자 행진에서 탈피하는 것이 올해 숙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올해 예정된 신차들이 정상적으로 출시돼야 한다.
한국GM은 완전변경 및 부분변경 모델 4~5개 차종을 내놓을 계획이다. 출시가 확정된 모델은 순수 전기차 볼트EUV다. 기존 CUV 형태의 전기차 볼트EV의 SUV 버전인 볼트EUV는 넓은 실내공간과 활용성으로 높은 경쟁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한국GM은 스파크, 트랙스, 트레일블레이저, 말리부 등 국내 생산 모델에 더해 글로벌 쉐보레 라인업을 확대함으로써 국내외 수요층을 늘리겠다는 방침이다.
그나마 위안은 최근 노사 관계가 안정됐다는 점이다. 한국지엠 노사는 지난 7월 22일 첫 상견례 이후 5개월 만인 지난달 무려 26차례 교섭 끝에 임단협을 최종 타결했다. 해를 넘겨 타결됐던 전년도 임단협과 함께 한 해 내내 교섭을 이어왔던 이들은 내년에는 오롯이 경영정상화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는 평이다.
업계 관계자는 "외국계 자본이 투입된 완성차 3사가 내수·수출 부진에 나란히 위기에 처했다"며 "현대·기아차가 해마다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는 상황에서 마이너 3사의 올해 최대 과제는 생존이 될 전망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