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인들 중에서 한국인과 유사한 민족은 누구일까? 어떤 사람들은 이탈리아와 한국이 비슷하다고 말한다. 같은 반도 국가에, 날씨도 비슷한 편이고, 흥분 잘하는 국민성을 예로 든다. 하지만 아일랜드인이 한국인과 공통점이 더 많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 두 나라 국민은 자기 민족이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애국심을 가지고 있다. 강대국에 끊임없이 시달려온 역사로 인해 두 민족에게는 한(恨)이라고 부를 수 있는 정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악조건 속에서도 두 민족은 뛰어난 문화를 발전시켰고, 음주가무를 즐기는 국민성도 비슷하다. 발전 과정은 다르지만, 가난한 나라에서 선진국으로 도약 한 점도 두나라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우리 조상 중 상당수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외국으로 이주했듯이, 아일랜드도 뿌리 깊은 이민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지난 칼럼에서는 스코틀랜드로 이민 간 아일랜드인들이 설립한 하이버니안 FC에 대해 알아보았다. 라틴어로 아일랜드 섬을 의미하는 하이버니아(Hibernia) 말고도, 아일랜드 이민자들과 연관된 대표적인 이름이 바로 셀틱(Celtic)이다.
켈트족(Celts)과 관련된 유물은 영국을 중심으로 유럽 전역에서 발견된다. 이들은 기원전 3세기에 아일랜드와 영국을 포함해 알프스 산맥 북쪽의 유럽 대부분을 점령했다. 멀리는 동쪽의 터키 지역까지 진출했다. 기원전 1세기 줄리어스 시저의 로마 군대는 켈트족과 대대적인 전쟁을 벌여, 이들을 격파했다. 로마와의 전쟁에 패한 켈트족들은 영국 쪽 섬지방으로 이동했다.
기원전 55년부터 로마 제국의 라틴족은 여러 번 영국을 침공해 켈트족과 전쟁을 벌였고, 현재의 잉글랜드와 웨일즈 지역을 점령했다. 전쟁에 패한 켈트족은 북쪽이나 주변 섬 등의 오지로 피할 수밖에 없었다. 로마 제국은 결국 5세기 초반까지 약 400년 동안 스코틀랜드 지역을 제외한 브리튼(Britain) 섬을 다스렸다. 라틴족이 철수한 이후, 독일에서 건너온 게르만족의 한 파인 앵글로 색슨(Anglo-Saxon)이 브리튼 섬을 침공하면서 잉글랜드가 형성되었다. 그에 반해 켈트족은 아일랜드, 웨일즈, 스코틀랜드 지역에 자리 잡은 변방 종족이 되었다.
Celt라는 명사에서 파생된 형용사가 Celtic이다. 오늘날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등이 포함된 셀틱 국가들의 언어와 문화를 의미한다. Celtic이라는 단어가 셀틱(Seltic)혹은 켈틱(Keltic)으로도 발음되기에, 도대체 어느 발음이 맞는지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둘 다 맞다. S로 시작하는 발음은 불어 Celte에서 유래했다. 또한 영어의 발음 규칙에 의하면 알파벳 c 다음에 e 혹은 i가 오면 S로 발음한다. 영어 단어 cell, cereal, circus를 발음해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18세기에 들어 언어 역사학자들은 K 발음이 단어의 어원인 고전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더 잘 반영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현대 영어에서는 K 발음이 좀 더 널리 쓰인다. 단 미국프로농구(NBA)의 보스턴 셀틱스 등 스포츠팀에 한해서는 S 발음으로 사용된다.
1840년대 대기근의 영향으로 아일랜드를 떠나 스코틀랜드로 이주한 이민자들의 상당수는 글래스고우에 정착했다. 1875년 에든버러에서 설립된 하이버니안 FC에서 영감을 받은 이들은 1887년 이민자들의 빈곤을 돋기 위한 기금 모금 수단으로 축구팀을 설립한다. 이 팀은 셀틱 FC라는 이름을 가졌는데,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의 뿌리인 켈트족의 이름을 딴 것이다.
셀틱은 이후 승승장구하며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명문 클럽으로 자리 잡았다. 셀틱은 1965년부터 1974년까지 9시즌 연속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했고, 또한 영국 클럽으로는 최초로 1967년 유로피언 컵(UEFA 챔피언스리그의 전신)에서 우승하는 영광을 누렸다. 단일 시즌에 자국의 1부 리그 우승, FA 컵과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하면 트레블(Treble)이라고 말하는데, 셀틱은 유럽 클럽 최초로 1966~67시즌에 이를 달성했다.
셀틱을 이야기할 때 ‘아덴라이 평원(The Fields of Athenry)’이라는 현대 민요를 빠뜨릴 수 없다. 대기근을 배경으로 한 이 노래의 가사는 마이클과 메리 부부의 대화 형식으로 되어있다. 마이클은 굶주린 가족을 위해 옥수수를 훔치다 감옥에 갇힌다. 호주로 유배 가기 전날 마이클은 메리를 위로하면서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워 달라고 부탁한다. 메리는 남편을 실은 배가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가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이 노래는 1990년대 들어 아일랜드 축구대표팀과 셀틱 FC의 응원가로 채택되어 현재까지 널리 사랑받고 있다. UEFA 유로 2012에서 당시 최강 스페인과 붙은 아일랜드는 실력 차를 실감하며 0-4로 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일랜드 팬들은 자국의 예선탈락이 확정적인 후반 38분부터 종료 휘슬이 울린 후까지 '아덴라이 평원'을 열창해 전 세계 많은 축구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당시 경기를 중계하던 독일 방송국의 해설진은 '아덴라이 평원'이 울려 퍼지는 동안 현장의 감동적인 모습을 시청자에게 생생히 전달하기 위해 일부러 말을 하지 않았다. 독일 축구 중계팀과 아일랜드 팬들의 합작으로 만들어낸 이러한 수준 높은 장면은 시청자와 현장을 하나로 묶는 품격 있는 방송으로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이러한 수준의 중계는 단순히 방송 기술의 향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축구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출발하는 이러한 중계를 국내에서도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초창기 셀틱의 팬들은 스코틀랜드에 정착한 아일랜드 이민자들과 가톨릭 신자들이었다. 하지만 셀틱의 성장과 더불어 유럽, 북미, 오세아니아 등에 사는 아일랜드 혈통을 가진 사람들이 팬으로 가세한다. 아울러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의 팬들까지 등장한다. 현재 셀틱은 전 세계에 걸쳐 200개가 넘는 서포터스 클럽을 거느린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