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무실 창 너머로 내려다보이는 풋살장에서 축구 하는 청년들 모습을 종종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공을 차는 그 친구들을 보면서 축구협회장으로서 각오를 되새기죠. 축구를 사랑하는 모든 분이 마음껏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는 약속, 꼭 지킬 겁니다.”
서울 한강로에 위치한 HDC현대산업개발 본사 회장실에서는 바로 옆 아이파크몰 옥상의 풋살장 5개 면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회장실 옥상에도 또 다른 풋살장 2개 면이 꾸며져 있다. 대기업 총수로 매일 분 단위로 쪼개 바쁜 일정을 소화하지만, 축구는 늘 곁에 두려는 애쓰는 정몽규(59) HDC현대산업개발 회장 겸 대한축구협회장이다.
지난달 29일 만난 정 회장은 “대한체육회로부터 (3선) 출마가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고, 단독 입후보를 확인한 뒤에도 (출마 여부를) 고민했다. 비전과 의욕을 갖고 한국 축구를 잘 이끌 분이 나오면 흔쾌히 물러날 용의가 있었다. 3선을 확정한 뒤 ‘4년 후 이 자리를 이어갈 분이 더욱 빛날 수 있게 길을 닦아주는 게 내 마지막 사명’이라고 각오를 다졌다”고 말했다.
제54대 축구협회장에 취임한 지난달 27일, 정 회장은 취임사에서 6대 중점 추진 과제를 발표했다. ▶여자축구 발전 ▶저변 확대 ▶대회·리그 혁신 ▶우수 강사 육성 ▶디지털화 ▶수익 다변화 및 신사업 개발 등이다. 지금까지 협회 행정과 수입의 큰 부분인 각급 대표팀 지원을 뒷순위로 놓고, 이제껏 ‘마이너’로 여겨졌던 영역을 과감하게 전면에 내세웠다.
코로나19 사태는 협회의 중장기 패러다임을 통째로 바꿨다. 정 회장은 “(코로나19 이전) 국내 개최 A매치(국가대표팀 경기)는 7회 연속 만원 관중일 만큼 호황이었다. 하지만 경기를 열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입장권, TV 중계, 스폰서십 등 관련 수입이 모두 끊겼다. 힘든 시기다. 오히려 (이때가)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고 행정력이 덜 미쳤던 분야를 육성할 기회”라고 강조했다.
변화의 출발점은 새 얼굴이다. 협회는 ‘정몽규호 3기’ 출범과 함께 부회장단 및 이사진을 파격적으로 교체했다. 선임 기준은 다양성, 전문성, 젊음, 여성 등이다. ‘국가대표 출신 60대 이상 중년 남성’ 이미지였던 협회 수뇌부를 젊고 활기 넘치는 전문가 조직으로 바꿨다. 여자 국제심판 출신 홍은아(42) 이화여대 교수(여자축구·심판)와 유튜브 크리에이터로 변신한 전 국가대표 골키퍼 김병지(51, 생활체육·저변 확대)가 부회장을 맡았다. 신아영(34) 스포츠 전문 아나운서와 여자축구 레전드 김진희(40) 경기감독관이 이사진에 합류했다.
인사 내용이 워낙 파격적이다 보니 논란도 불거졌다. 예컨대 일각에서는 “신아영 이사는 행정 경험이 없는데 전문성을 어떻게 검증했나”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정 회장은 “향후 협회는 자체 영상 콘텐트 제작 역량을 방송사 수준으로 끌어올릴 예정이다. 장기적으로는 경기 생중계 등 관련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어 판매할 계획도 있다. 신 이사는 축구 관련 방송을 오래 해 노하우와 인사이트를 쌓았다.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 내한 때 회견 진행을 맡는 등 협회와 교류도 꾸준했다. 미디어 부문 조언자로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정 회장은 “3선 준비 과정에서 여러 축구인을 만났다. 진심 어린 조언과 따끔한 질책을 아우르는 공통 화두는 ‘행정은 투명하게, 기회는 공정하게’ 해달라는 거였다. 한국 축구가 하루빨리 생기를 되찾을 수 있게 ‘위드(with) 코로나’ 시대에 맞는 전략을 세워가겠다. 도움되는 분이라면 앞으로도 나이·출신·성별과 관계없이 파격적으로 발탁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