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랐던 조건은 아니지만, 여기까지 오는 과정은 여의치 않았다. 양현종은 세계 최고의 선수가 뛰는 미국 메이저리그의 마운드에 오르는 모습을 늘 희망했다. 16승 8패를 기록한 2014년 시즌 종료 뒤 포스팅시스템을 통해 해외 진출에 도전했다. 하지만 포스팅 금액이 예상보다 적어 KBO 무대에 남았다. 소속팀 KIA도 '에이스'를 적은 금액에 보내지 않기로 했다. 2016년 시즌 뒤에는 일본 구단으로부터 좋은 대우를 제시받았지만, 가족과 상의 끝에 한국에 남기로 했다.
2020년 11승 10패 평균자책점 4.70으로 부진한 양현종은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다시 한번 미국 무대 진출을 타진했다.
여러모로 상황이 안 좋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현지 이적 시장은 더디게 흘러갔다. 빅리그 구단은 오랫동안 양현종을 관찰했지만, 영입 우선순위는 아니었다. 2014년부터 7시즌 연속 170이닝 이상을 던졌지만, 지난해 성적도 협상에서 주도권을 쥘 성적은 아니었다. 적지 않은 나이도 협상의 장애물이었다.
당연히 KIA는 14년간 뛴 '에이스'를 붙잡으려 노력했다. 양현종은 1월 20일까지 협상 데드라인을 설정했다. 미국 구단과 계약이 이뤄지지 않으면 KIA와 FA(자유계약선수) 협상을 이어가려 했다. 하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자 KIA 구단에 재차 양해를 구해 시간을 확보했다. 특별한 성과는 없었지만, KIA도 새 시즌을 준비해야 하는 만큼 더는 '시간 연장'을 요청할 수 없었다. 결국 1월 30일 구단 사무실을 들러 'KIA를 떠나 미국 메이저리그 진출에 도전하겠다'는 최종 입장을 전달했다. 어느 것도 정해진 것 없는 상황, 양현종은 배수진을 치며 미국 무대 진출에 올인했다. KBO리그에 남았다면 더 많은 연봉과 안정적인 환경에서 뛸 수 있었지만, 오랫동안 간직한 '꿈'을 선택했다.
양현종은 스플릿 계약 형식으로 도전 기회를 얻었다. 40인 로스터에 포함되지 못했고, 당연히 마이너리그 거부권 조항도 없다.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으면 연봉 130만달러를 포함해 55만달러 인센티브까지 최대 185만달러(약 20억 5000만원)를 수령할 수 있다. 마이너리그 최저 연봉까지 감수해야 한다. KBO리그에서 '최고'의 자리에 섰던 그가 낯선 미국 무대에선 '도전자'의 신분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상황이다. KBO리그에서 '좌완 트로이카'를 형성한 류현진(토론토), 김광현(세인트루이스)이 앞서 메이저리그 계약을 할 때처럼 대우를 받진 못했지만, 기회를 어떻게 살리느냐에 따라 앞날은 달라질 수 있다.
메이저리그 공식홈페이지 MLB닷컴은 "양현종이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포함될 기회가 있을 것"이라며 "텍사스 구단 선발 로테이션 혹은 불펜 모두에 깊이를 더할 수 있는 카드"라고 평가했다.
텍사스의 선발 투수는 카일 깁슨, 마이크 폴티네비치, 아리하라 고헤이 3명만 결정됐다. 현지 언론은 양현종이 스프링캠프에서 조던 라일스, 한국계 데인 더닝, 카일 코디 등과 4∼5선발을 다툴 것으로 내다봤다. 이들 가운데 좌완 투수는 양현종뿐이다. 양현종은 좌완 선발 후보라는 이점에 내구성을 갖춘 자원이다. 텍사스의 마운드가 약한 편이라 기회를 받을 여지도 크다. 자신의 장점을 잘 활용한다면 입지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양현종의 소속사도 "텍사스는 양현종 선수가 포스팅할 때부터 관심을 보여준 팀이다"라며 "그만큼 양현종 선수를 잘 파악하고 있기에 실력 발휘할 기회를 받을 수 있는 가장 적합한 구단이라고 판단했다"고 계약 배경을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