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대유행에 은행들이 '안정' 인사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하나은행은 새로운 수장을 맞이하게 됐다. 특히 하마평에 오르내리지 않던 인물을 은행장에 발탁하자 업계는 하나금융그룹을 이끌 차기 회장 수순을 밟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분위기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나은행 새 행장에 내정된 박성호 현 하나은행 디지털리테일그룹 부행장은 최근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의 뒤를 이을 후보 중 한 사람으로 등장하며 주목받았다.
하나금융지주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는 최근 국내외 경제 불확실성과 조직의 안정을 근거로 들어 김정태 회장의 4연임을 사실상 확정하며, 숏 리스트(최종 후보군)까지 올랐던 박성호 부행장의 이름이 지워지는 듯했다.
하지만 하나은행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가 박 부행장을 은행장 후보로 단독 추천하며 다시 존재감을 알리게 됐다.
박성호 내정자는 그동안 최고경영자(CEO) 경험을 꾸준히 쌓아온 인물이라는 평가받는다. 미래 먹거리로 꼽히는 디지털과 글로벌 부문의 역량을 두루 갖추고 있는 데다가, 디지털과 관련 대규모 사업들을 잇달아 성공적으로 이끈 실적까지 가지고 있다.
박 내정자는 지난 2015년 하나·외환은행 합병 당시 통합추진단장으로서 지연되던 양 은행 합병 작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고, 이듬해인 2016년에는 하나금융티아이(옛 하나아이앤에스) 사장으로서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전산통합 작업도 성공적으로 마쳤다.
하나금융 측은 "급변하는 금융시장에서 중요도가 커지고 있는 디지털과 글로벌, 자산관리 분야에서의 풍부한 경험과 탁월한 식견을 바탕으로 조직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줄 최고의 적임자다"고 평가했다.
나아가 1년 후 다시 '포스트 김정태'를 낙점해야 하는 하나금융 입장에서는 올해 박 내정자를 유심히 들여다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올해 적임자가 나오지 않아 '4연임은 없다'던 김 회장을 1년 더 자리에 앉히게 된 하나금융은 '포스트 김정태'를 만들어야 한다.
박 내정자는 하나은행 전신인 한국투자금융에 입사해 하나은행 인도네시아 법인 은행장과 하나은행 자산관리그룹 부행장, 하나금융티아이 대표이사 사장 등을 거친 '뼛속까지' 하나은행 사람으로 평가된다.
또 박 내정자는 그룹에서 회장 비서실장 격인 경영지원실장을 역임하며 김정태 회장과 손발을 맞춘 바 있다. 이에 이번 박 내정자의 하나은행장 발탁이 '은행장 경력 부재'가 약점이던 그를 ‘포스트 김정태’로 구상하기 위한 하나금융의 의도라는 해석도 나온다.
게다가 박 내정자는 두드러진 법적 리스크도 없다.
하나은행장 연임 가능성이 있었던 지성규 행장은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로 금융감독원에서 경징계(주의적 경고)를 받았고, 라임 사태와 관련돼 제재가 예상되면서 ‘제재리스크’ 부담을 안으며 회장 후보군에 거론되지 않았다.
하나금융의 유력한 차기 회장 후보이던 함영주·이진국 부회장은 각각 '채용비리 1심'과 '주식 선행매매 혐의'로 법적 리스크가 뒤따르고 있다.
이에 금융권에서는 박 내정자의 취임 후 1년 성적표가 중요한 판가름의 근거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올해 하나은행은 대만 진출과 함께 인도네시아 인터넷 은행 출범 등 해외 네트워크 확대를 목표로 두고 있어 해외 전문가인 박 내정자에 거는 기대가 높다.
다만, 함영주 부회장의 소송결과가 변수로 거론된다. 그동안 '포스트 김정태'로 주목받아 온 함 부회장의 내달 24일 공판 결과에 따라 다음 회장 후보자 명단에도 이름을 올릴 가능성은 있다는 분석이다.
권지예 기자 kwon.jiy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