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은 지난 29일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2020~21 도드람 V리그 우리카드와의 원정 경기에서 세트 스코어 3-1로 승리, 정규시즌 종료 한 경기를 남겨두고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했다. 봄 배구 진출을 향한 마지막 싸움이 치열한 가운데, 대한항공(승점 73, 25승 10패)과 우리카드(승점 64, 22승 13패)는 1·2위를 확정했다.
대한항공은 역대 네 번째이자, 2018~19시즌 이후 2년 만에 다시 정규시즌 정상에 섰다. 또한 2016~17시즌 이후 네 시즌 연속 챔프전 진출에 성공하며 강팀의 면모를 과시했다. 지난 시즌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포스트시즌이 개최되지 않았다.
대한항공은 올 시즌 모험을 선택했다. 창단 첫 챔프전 트로피를 안긴 박기원 감독과 작별하고, 이탈리아 출신의 로베르토 산틸리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V리그 최초의 외국인 사령탑 선임. 산틸리 감독이 그동안 유럽리그에서 많은 경험을 쌓았지만, 아시아 리그는 처음이라 과연 V리그에 자신의 경험을 어떻게 접목할지 기대와 우려가 공존했다.
산틸리 감독은 심판 판정에 강하게 불만을 표하는 등 다혈질 성격을 보였지만, 선수들의 승부욕을 자극하며 정상 등극을 이끌었다. 산틸리 감독도 "첫 훈련 때 선수들의 눈에 비친 내가 '다른 행성에서 온 외계인' 같았다"라며 "소통에도 어려움이 있어 내 훈련 방식을 선수들에게 이해시키는 게 어려웠다"라고 돌아봤다.
강력한 우승 후보로 손꼽힌 대한항공이지만, 시즌 중반 큰 위기에 직면했다. 외국인 선수 안드레스 비예나가 무릎 부상으로 중도 이탈한 것이다. 코로나19 영향으로 대체 선수 영입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외국인 선수 의존도가 높은 V리그에서 비예나의 이탈은 곧 위기 신호였다.
하지만 대한항공은 요스바니 에르난데스(등록명 요스바니)의 영입이 결정되기까지 외국인 선수가 없는 동안 9승 4패로 안전비행을 했다. 화려한 선수층이 외국인 선수의 공백을 최소화했다. 그 가운데 KOVO컵에서 맹활약한 임동혁의 활약이 눈부셨다. 원포인트 서버로 주로 나서던 '입단 4년 차' 임동혁은 앞선 세 시즌 111점에 그쳤으나 이번 시즌에만 480점을 기록하고 있다. 공격 성공률은 51.15%로 7위(국내 선수 3위)에 올라 있다.
V리그 최고 세터 한선수, 국내 선수 득점 1위(622점)·성공률 전체 1위(55.16%) 정지석, 살림꾼 곽승석의 존재감도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내며 대한항공의 선두 행진을 이끌었다. 산틸리 감독은 "외국인 선수를 많이 활용하지 못한 상황에서, 국내 선수들의 힘으로 1위 자리를 지킨 것은 큰 성공이다"라고 돌아봤다.
대한항공은 구단 역사상 최초의 통합 우승을 향해 다시 비행한다. 앞서 2017~18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했지만, 당시 정규리그에서는 3위에 그쳤다. 정규시즌 1위를 차지한 2010~11, 2016~17시즌에는 각각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에 막혀 챔피언결정전 우승 문턱에서 좌절했다.
프로 데뷔 후 대한항공에서만 뛴 한선수와 정지석의 각오는 남다르다. 한선수는 "예상하지 못한 1위를 했다. 챔피언결정전에서도 버티면 될 것 같다. 모든 걸 쏟아내겠다"라고 했다. MVP 후보로 손꼽히는 정지석은 "(MVP보다) 통합 우승 숙원을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