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선수가 있다 하더라도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축구에서는 개인이 팀을 절대로 이길 수 없는 법이다. 그렇기에 하나로 뭉치는 '원팀'이 축구 팀의 가장 강력한 무기다. '원팀'이 돼야 성과를 이룰 수 있다. 모든 지도자들과 선수들이 '원팀'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는 이유다.
'원팀'의 조건은 여러 가지다. 그중 벤치 멤버의 역할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라운드에는 11명만이 뛸 수 있다. 그라운드에 나서지 못하는 다른 선수들은 그림자 역할을 해야 한다. 팀을 위해 기꺼이 헌신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불만과 분노를 표출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여기에서 '원팀'과 '나눠진 팀'으로 갈리게 된다.
벤치 멤버의 희생. 명령으로 이끌어낼 수 없다. 자신이 경기에 뛰지 못해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해도 팀을 위해서라면 못할 일이 없다. 기꺼이 조연이 돼 주연들이 밝은 빛을 낼 수 있도록 도와준다. 팀과 동료들을 향한 '진심'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8일 2020 도쿄올림픽 여자 축구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플레이오프 1차전 한국과 중국의 경기가 열린 고양종합운동장. 한국 대표팀의 선발은 11명. 박세라, 심서연, 홍혜지, 임선주, 이민아, 지소연, 추효주, 강채림, 장슬기, 이영주, 김정미까지 베스트 멤버로 선택됐다.
벤치 멤버는 9명이었다. 강가애, 윤영글, 권은솜, 손화연, 여민지, 이금민, 이세진, 조소현, 최유리까지 9인은 나란히 의자에 앉아 경기를 지켜봤다. 고양종합운동장 벤치는 대형 월드컵 구장과 달리 대기 선수들의 몸짓과 행동을 모두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들을 통해 한국 여자 대표팀이 진정한 '원팀'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경기 시작부터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그라운드 안에 있는 11명과 함께 했다. 9명이 동료들에게 진심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은 '박수'였다.
한국이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도 박수, 실수를 해도 박수, 득점 기회를 잡아도 박수, 실점 위기를 맞이해도 박수를 쳤다. 팀 동료가 교체해 들어갈 때도 박수를 쳤고, 벤치를 떠나 몸을 풀 때도 경기장에서 눈과 손을 떼지 못했다. 응원의 박수, 격려의 박수, 기쁨의 박수, 안도의 박수가 공존했다.
그들은 90분 동안 총 '45번'의 박수를 쳤다. 전반에 27번, 후반에 18번 박수가 나왔다. 9명이 동시에 친 적도 있고, 몇 명이서 함께 친 적도 있고, 개개인이 따로 친 적도 있었다. 선수 교체가 이뤄지고, 벤치 멤버가 바뀌어도 박수는 달라지지 않았다. 강요로는 나올 수 없는 장면이다. 그들은 손에 진심을 담아 그라운드 안으로 힘을 전했다.
박수가 나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 실점을 한 순간이다. 이들은 순간 얼어버렸다. 또 한국이 득점을 할 때도 박수는 멈췄다. 전반 38분 강채림이 동점 골을 터뜨리자 벤치에 남아있던 3인은 서로 껴안은 채 폴짝폴짝 뛰었다. 박수마저 잊어버릴 만큼 기뻤던 순간이다. 실점과 득점 장면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 박수를 통해 동료들과 소통했다고 할 수 있다.
결과는 1-2 패배였다. 중국 여자 축구는 세계적 강호로 통한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에서 중국(15위)이 한국(18위)에 앞서 있다. 역대 전적에서도 이 경기 전까지 한국은 37전 4승6무27패로 열세였다. 게다가 중국은 한국보다 훨씬 긴 준비와 훈련 기간을 가졌다. 한국이 홈이라는 이점을 제외하고는 유리할 게 없는 대결이었다.
그런데도 대등하게 싸웠다. 조금만 더 가다듬는다면 중국을 잡을 수 있겠다는 희망도 안겼다. 그라운드 안 11명과 그라운드 밖 9명의 힘이 합쳐져 나온 경쟁력이었다.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2차전은 오는 13일 중국 쑤저우에서 열린다. 한국은 2골 차 이상 승리를 거둬야 한다. 중국 원정이기에 쉽지 않은 일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다.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 벨 감독 역시 "전반전이 끝난 상태다.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여자 대표팀은 '원팀'이라는 걸 보여줬다. '원팀'은 강하다. '원팀'은 모두의 예상을 뒤집는 극적인 힘을 내기도 한다. '원팀' 앞에 불가능이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