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신수(39·SSG)는 14일 기준으로 KBO리그 정규시즌 9경기를 뛰었다. 타율 0.167(30타수 5안타), 홈런 1개, 삼진 6개, 볼넷 3개, 사구 2개를 기록했다. 첫 홈런(8일 한화전) 말고는 2루타나 3루타도 없다.
추신수는 한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스무 살에 미국으로 건너갔다. 메이저리그(MLB)에서만 16년을 뛰었다.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과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대표팀에서 뛰었다고 해도 사실상 KBO리그 루키다. 그에게는 '적응기'가 필요하다.
투수와 타자가 처음 만나면 대체로 투수가 유리하다. 타자가 데이터로 투구를 분석하는 것과 직접 상대하는 건 다르기 때문이다. 통상 외국인 투수보다 외국인 타자의 적응기가 긴 이유다.
리그를 옮긴 타자의 적응 변수는 ▶스트라이크 존의 높이와 좌우폭 ▶투수의 구위와 구종 ▶배터리가 선호하는 공배합 등이다. 지금 추신수는 세 가지에 모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추신수는 지난달 22일 롯데와의 부산 시범경기에서 노경은의 몸쪽 공을 그대로 보낸 뒤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삼진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심판은 스트라이크 콜을 하지 않았고, 추신수는 멋쩍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심판 콜이 나오기도 전에 타자가 삼진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경기 후 추신수는 "솔직히 100% 스트라이크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차트를 보니 스트라이크를 줘도 되고, 볼을 선언해도 되는 공이었다. 내가 너무 일찍 판단했다"고 말했다. 추신수는 낮은 공을 스트라이크로 잡아주는 장면에서 고개를 갸웃하기도 했다.
KBO리그에서는 직구보다 변화구 승부가 많은 편이다. 김원형 SSG 감독도 이를 언급했다. 김 감독은 14일 NC전에 앞서 "KBO리그 투수들이 (MLB보다) 변화구를 더 많이 던지는 것에도 추신수가 적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타자가 정말 적응하기 어려운 건 리그의 구속 차이다. 패스트볼 공략 여부는 리그를 옮길 때 스카우트 파트가 가장 중요하게 보는 요소다. 강정호가 피츠버그에서 기대 이상으로 활약한 건 MLB 투수들의 빠른 공을 공략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MLB 경력이 전혀 없는 멜 로하스 주니어가 2020년 KBO리그 최우수선수(MVP)에 오른 것도 KT 스카우트팀이 "시속 95마일(153㎞) 이상의 패스트볼에는 약하지만, KBO리그 투수들의 직구는 충분히 공략할 수 있다"고 내린 판단이 옳아서였다.
추신수에게는 이 '속도차' 극복이 가장 큰 과제로 보인다. 타자가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면 정타도, 장타도 때리기 어렵다. 정규시즌 개막 직후 추신수는 특이하게도 '느린 패스트볼'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가 지난주 때려낸 타구는 모두 2루수나 우익수 등 오른쪽을 향했다. 한화 김범수로부터 때린 홈런도 시속 144㎞ 직구를 잡아당긴 것이었다.
오른쪽으로 날린 타구는 그나마 괜찮은 결과였다. 지난주 추신수는 투구가 스크라이크존을 통과하기 전에 스윙한 경우가 꽤 많았다. 시속 140㎞ 짜리 직구에 방망이가 헛돌다가, 시속 155㎞ 강속구를 당겨 우전안타(9일 LG 고우석)를 날리기도 했다. 보통 "타이밍이 맞지 않는다"는 말은 "배트가 늦거나 투구에 밀린다"는 의미로 쓰인다. 그러나 추신수의 경우는 반대다.
2020년 기준으로 KBO리그 투수들의 패스트볼 평균 속도는 시속 142.4㎞(스포츠투아이 기준)였다. MLB는 시속 149.8㎞(스탯캐스트 기준)에 달했다. 몇 달 만에 추신수는 시속 7~8㎞ 느린 패스트볼, 더 많은 변화구와 상대하는 것이다. 야구 대표팀이 아시안게임에서 120~130㎞의 공에 의외로 고전한 이유도 '느린 패스트볼'에 동체시력과 스윙 밸런스가 흔들렸기 때문이었다.
'더 빠른 공'에 대응하려면 운동 능력이 더 필요하지만, '더 느린 공' 공략은 적응기를 거치면 된다. 추신수는 14일 NC전에서 큼지막한 좌익수 플라이를 만들기도 했다. 직구를 기다리다 오히려 반 박자 늦게 스윙하는 장면도 있었다. 김원형 감독은 "주위의 기대가 커서 추신수가 느끼는 책임감이 크다. 훈련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범경기에 나섰고, 지금도 매일 가장 일찍 출근해서 훈련하더라. 여러 가지로 피곤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