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축구를 대표하는 12개 팀이 지난 19일(한국시간) ‘유러피언 슈퍼리그(ESL)’ 창설을 선언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6개팀(리버풀, 맨시티, 맨유, 아스널, 첼시, 토트넘)과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3개팀(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그리고 이탈리아 세리에A 3개팀(유벤투스, 인터밀란, AC밀란)이 먼저 슈퍼리그 참가 의사를 밝혔다. ESL은 추가로 참가팀을 모아(창설 멤버 15개팀+5개팀) 2022~23시즌에 대회를 시작하는 게 목표다.
이럴 경우 유럽의 클럽 대항전을 주관하는 유럽축구연맹(UEFA)의 기득권은 돈 앞에서 와르르 무너질 수 있다. UEFA는 격렬하게 반대하고 나섰고, 가능한 모든 징계 수단을 쓰겠다고 선언했다. 지난 1월 슈퍼리그 창설 소문이 돌았을 때, UEFA의 상위기관인 국제축구연맹(FIFA)은 ‘FIFA가 승인하지 않은 대회에 참가하는 팀과 소속 선수들에게 불이익을 주겠다’고 천명했다. 이에 따라 FIFA는 ESL에 참가하는 팀의 소속 선수들은 FIFA 월드컵 참가 금지 징계를 주겠다고 했다. 만일 ESL 시작 시기가 빨라지면 손흥민(토트넘)이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 참가하지 못할 수도 있다. 벌써부터 외신에는 ‘월드컵 불참 징계를 받는 선수들을 제외하고 꾸린 나라별 베스트11’ 같은 뉴스가 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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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클럽들 ‘내가 번 돈, 내가 더 가져간다’
유럽 축구는 우승 경쟁을 벌이는 빅 클럽들과 1부에서 버티는 것을 목표로 하는 중소 클럽들로 확연하게 나뉜다.
빅 클럽들이 리그 수익의 80% 가까이 벌어들이지만 중계권료 등의 수익은 1부리그의 모든 클럽이 나눠갖는다. ESL은 이러한 빅클럽의 가려운 부분을 파고들었다. ‘많이 버는 팀이니 많이 가져가라’는 것이다.
영국 ‘인디펜던트’ 보도에 따르면 ESL은 참가하는 15개팀에 참가비 만으로 총 35억 유로를 푼다. 팀당 약 2억3000만 유로(3130억원)를 가져갈 수 있다. 물론 3000억원 이상의 우승 상금과 성적에 따라 차등지급되는 돈은 별도다.
현재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상금이 1900만 유로(254억원)다. 중계권료 및 참가 수당을 합해도 우승팀이 가져가는 돈의 총액이 8200만 유로(1096억원) 수준이라서 ESL과 비교할 수준이 아니다. 빅 클럽 입장에서는 강등 걱정 없이 큰 돈을 보장 받는 게임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코로나19로 최근 빅 클럽들의 재정이 어려워진 것도 ESL 참가 의사를 굳히는데 한몫 했다.
ESL 참가팀에 주는 돈은 미국 투자은행 JP모건이 끌어온 투자금을 배분한다. 벌써부터 넷플릭스, 아마존 등 OTT 서비스가 천문학적인 독점 중계권을 사들일 거라는 루머가 돌고 있다. 추가 스폰서가 들어올 수도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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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EFA+유럽 축구팬 “그들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
토트넘의 팬 페이지 ‘스퍼스 웹’은 19일 칼럼에서 “다니엘 레비(토트넘의 CEO)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고 썼다.
유럽 현지의 반응은 인기 클럽들이 ‘그들만의 리그’를 만드는 게 이기적이고 정통성을 해치는 돌발 행동이라는 것이다.
유럽의 각 리그는 빅 클럽에서 나오는 낙수 효과를 충분히 누리고 있다. 이들이 벌어들인 돈을 함께 배분하면서 대다수의 팀들이 유스 시스템과 여자축구 팀을 함께 운영할 수 있었다. 만일 빅 클럽들이 이를 원천봉쇄하고 수익을 독점할 경우 전체적인 인프라에 악영향을 미친다.
또한 창설 멤버 15개팀은 영원히 강등되지 않도록 하는 ESL의 폐쇄적인 운영이 ‘강등제’라는 유럽 축구의 본질을 해친다는 의견도 많다. 유럽의 명문 클럽들이 승강제가 없는 미국식 시스템 안에서, 미국 자본력에 의해 경기를 한다는 점도 유럽 팬들에게 거부감을 주고 있다.
축구 스타 출신 해설자 게리 네빌은 “150년간 쌓아온 잉글랜드 축구의 피라미드 시스템을 붕괴시키는 일”이라며 프리미어리그의 6개 참가팀에 중징계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축구 서포터즈 모임인 ‘팬스 유럽’은 “슈퍼리그는 불법이고 무책임하며 반 경쟁적”이라고 성명을 냈다.
FIFA는 홈페이지에 공식 입장을 전하면서 “연대, 포용, 진실성, 공평한 이익의 분배는 축구의 본질”이라며 “이러한 본질을 뒤흔드는 ‘폐쇄적인 탈 유럽 리그’를 승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영국 정부 역시 ESL 출범을 저지하기 위해 정부 입장에서 가능한 조치를 모두 취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영국 정부는 세금을 내는 시민들이 영국에서 축구를 즐기는데 해가 되지 않도록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ESL 측은 지아니 인판티노 FIFA 회장과 알렉산드르 제페린 UEFA 회장에게 서한을 보내 FIFA와 UEFA가 자신들이 약속 받은 자금 지원을 위태롭게 하는 징계를 이어갈 경우 법적인 대응을 한다고 밝혔다.
새로운 자본의 논리냐, 정통 유럽 축구의 기득권이냐를 두고 ESL 출범의 여진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