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혼을 보여주고 있는 노장 불펜 투수들. 송은범·안영명·김대우(왼쪽부터). 삼성 셋업맨 우규민(36)은 지난 12일 KT전에 등판하며 개인 통산 600경기 출장(역대 25호)을 달성했다.
2004년 LG에서 데뷔, 선발투수와 셋업맨 그리고 마무리 투수까지 두루 맡았다. 리그를 대표하는 '전천후' 투수로 인정받았고, 19년째 프로 무대에서 버텨내며 의미 있는 기록을 세웠다.
우규민은 경기 뒤 "마음은 1000경기도 나서고 싶다. 그러나 항상 (오늘 등판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마운드에 오른다. 그래서 더 소중하고 '던질 수 있을 때까지 마음껏 공을 던지고 싶다'는 마음뿐이다"라고 전했다.
우리 나이로 37살. '노장'이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다. 우규민은 몸 관리 비결을 묻는 말에 "경기 체력은 큰 문제가 없고, 운동을 준비하는 과정도 전과 다를 게 없지만 한 살 더 먹을 때마다 몸이 둔해지더라. 그래서 순발력 훈련에 더 신경 쓴다"라고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 숫자(나이)를 실감한다.
이어 '3년 선배' 오승환(39)을 언급하더니 "그 나이에도 시속 150㎞대 강속구를 뿌린다. (오)승환이형을 보면서 여러 가지를 느낀다"라고 했다. 마흔에 클로저를 해내고 있는 선배의 레이스와 경기 준비 과정은 베테랑인 우규민에게도 귀감 됐던 것. 덕분에 멘털과 목표 의식을 다잡을 수 있었다. 우규민은 16일 현재 18경기에 등판, 자책점을 1점도 기록하지 않는 쾌투를 이어가고 있다. 홀드는 7개를 챙겼다. 삼성은 8·9회를 든든히 지켜내고 있는 노장 듀오 덕분에 리그 1위를 지키고 있다.
1985년생인 우규민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마운드에 선다. 동갑이거나 그보다 많은 나이가 많은 선수도 크게 다르지 않은 마음가짐일 것. 비록 시즌 초반이지만, 선수 생활 '황혼기'에 투혼을 발휘하고 있는 불펜 투수가 올해 유독 많다.
통산 600경기 출전을 달성한 삼성 셋업맨 우규민. IS포토 1984년생 라인은 롯데 김대우(37)가 있다. 김대우는 롯데 불펜 투수 중 가장 많은 등판(18경기)을 소화했다. 2승·2패·4홀드, 평균자책점 3.32를 기록했다. 준수한 성적이다. 투수로 입단해 타자로 전향했다가 2017년 여름부터 다시 마운드에 선 선수다. 지난해 46경기(49⅓이닝)에 등판해 3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고, 올해는 더 중요한 상황에서 투입되고 있다. 4월 16일 삼성전에서는 입단 14년 만에 승리 투수가 됐다. 롯데 소속 역대 최고령(만 36세 8개월 21일) 데뷔 첫 승을 거뒀다. 시속 150㎞ 강속구가 주무기인 투수였지만, 투심과컷패스트볼(커터)를 장착하며 한층 좋은 투구를 보여주고 있다. 5월 들어 투구 기복이 있지만, 벤치 관리가 동반된다면 허리진 주축 역할을 해낼 것으로 보인다.
KT 안영명(37)도 1984년생이다. 2003년 한화에서 데뷔, 18년 동안 독수리 군단 일원이었지만 지난해 11월 방출 통보를 받았다. 즉시 전력 불펜 투수 확보를 노리던 KT가 손을 내밀었다. 개막 전까지는 기대치가 높진 않았다. 그러나 올 시즌 16경기에 등판, 평균자책점 2.00을 기록하며 활약하고 있다. 이강철 KT 감독은 "(안)영명이가 1이닝 이상 막아준 덕분에 불펜 소모를 최소화했던 경기도 있었다. 인터벌이 빠른 점은 야수진에도 도움이 되고, 슬라이더도 여전히 좋다. 보이지 않는 위치에서 잘 해주고 있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안영명은 11일 삼성전 8회 등판, 1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KT 이적 뒤 첫 홀드를 기록했다. 15일 사직 롯데전에서도 홀드를 기록했다. 현재 그는 필승조 일원이다.
우규민처럼 '전천후'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LG 송은범(37)도 여전히 뜨겁다. 14경기 등판, 18⅔이닝을 소화하며 1승·3홀드·평균자책점 3.86을 기록했다. 선발 투수 또는 오프너가 긴 이닝을 소화하지 못하면 여지없이 그가 투입된다.
1985년생 중에는 김진성과 임창민(이상 36·NC)이 있다. 팀 홀드(21개) 절반 이상을 두 선수가 기록했다. 임창민 7개, 김진성이 6개. 김진성은 3번이나 1이닝 이상 소화할 만큼 활용도가 넓은 투수다. '전' 마무리 투수였던 임창민도 2점(2.25)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NC 허리진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다. 리그 최고 마무리 투수 중 한 명인 한화 정우람(36)도 이들과 동갑내기다. 올 시즌 11경기 등판, 4세이브·평균자책점 3.00을 기록했다. 올 시즌 블론세이브는 없다.
장원준이 다시 뛴다. IS포토 두산 장원준(36)도 데뷔 18년 차를 1군에서 보내고 있다. 그는 통산 129승, 8년(2008~17시즌·군 복무 기간 제외)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거둔 리그 대표 좌완이다. 부상과 기량 저하로 2018년부터 내리막길을 걸었는데, 올해 스프링캠프를 모두 소화하며 재기 발판을 만들었고, 5월부터 두산 허리진에서 힘을 보태고 있다. 홀드도 2개를 기록했다. 칭찬에 인색한 김태형 감독이 "공은 좋다"고 인정했다. 앞서 언급한 투수들처럼 팀 기여도가 높은 편은 아니지만, 장원준의 봄도 뜨겁다.
2019시즌 키움의 마무리 투수를 맡았던 오주원(36)도 올 시즌 11경기에 등판했다. 1983년 불펜 투수 이현승(38)은 아직 시즌 첫 등판을 치르지 못했다. 최근 퓨처스리그에 등판 복귀를 준비 중이다. 롯데에서 방출된 뒤 LG와 육성 선수 신분으로 계약하며 선수 생활 연장을 노리고 있는 고효준(38)도 2군에서 실전 감각을 회복 중이다.
올 시즌 성적, 역할, 입지 등 저마다 처한 상황은 다르다. 나이라는 벽을 깨고,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고 있는 점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