췌장암 투병을 하던 유상철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이 끝내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7일 사망했다. 일간스포츠는 7일 유상철 감독 측근으로부터 사망을 확인했다. 치료가 잘 되는 것 같았지만 폐로 전이가 되서 고비가 왔고, 끝내 눈을 감았다. 유상철 감독은 2019년 11월 췌장암 판정을 받았고, 이후 회복세를 보였다. "꼭 그라운드로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했고, 성실하게 치료에 임했다. 하지만 끝내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 향년 50세.
그는 한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멀티 플레이어로 꼽힌다. 공격수와 미드필더 수비수까지 모든 역할을 다 해냈다. K리그에서 1998년 득점왕을 차지하면서 공격력을 과시했고, 미드필더와 수비수로도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축구인들은 "유상철이 한 포지션에 집중했다면 아마 역대 최고의 선수가 나왔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유상철의 역사. 역시나 최고의 순간은 2002년 한일월드컵이다. 그는 거스 히딩크호의 주축으로 활약하며 4강 신화를 이끌었다. 유상철 최고의 장면은 D조 1차전 폴란드와 경기였다. 2002년 6월 4일. 전반을 1-0으로 앞선 한국은 폴란드의 역습에 불안감을 가져야 했다.
이를 말끔히 해결 시켜준 이가 유비였다. 후반 8분 시원한 슈팅으로 폴란드 골망을 흔들었다. 폴란드의 기세가 꺾이고, 한국의 월드컵 첫 승이 확실시 되는 순간이다. 유상철은 환하게 웃으며 그라운드에서 세리머니를 했다. 한국 국민은 모두 유상철과 함께 웃었다. 기뻤다. 그리고 감동을 받았다.
그는 또 K리그의 전설이다. 울산 현대의 두 번의 리그 우승. 모두 유상철의 작품이었다. 또 J리그의 전설로도 추앙받는다. 그는 요코하마 마리노스 유니폼을 입고 두 번의 J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J리그 팬들이 유비를 잊지 못하는 이유다.
유비는 떠났다. 한국 축구의 영광을 남기고 떠났다. 그가 남긴 역사는 영원히 한국 축구 팬들에게 기억될 것이다. 굿바이 유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