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자유계약선수)가 되는 건 프로선수의 꿈이다. 대형 계약으로 큰돈을 벌 기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에게나 그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KBO리그 선수는 1군에서 8~9년을 뛰어야 FA(재취득은 4년)가 된다. 꾸준하면서도 오래 활약해야 달 수 있는 일종의 '훈장'이다. 선택받은 몇몇 선수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기도 하다.
삼성 포수 강민호(36)에게 올 시즌은 특별했다. 2017년 11월 사인한 FA 4년 계약(계약금 40억원, 연봉 총액 40억원)의 마지막 해로 시즌 뒤 FA로 풀릴 예정이다. 성적이 곧 돈으로 연결되는 FA 계약의 특성상 2021시즌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가 무척이나 중요하다.
개막 전 전망은 밝지 않았다. 삼성에서 뛴 첫 3년(2018~2020) 동안 타율 0.264를 기록했다. 잔부상에 시달려 연평균 120경기(정규시즌 144경기) 출전에 그쳤다. 국가대표 포수 출신으로 팀 내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만, 그라운드에서 보여준 활약은 기대를 밑돌았다. 2019년에는 개인 최저 수준인 타율 0.234를 기록하기도 했다. 30대 중반의 적지 않은 나이. '에이징 커브'가 큰 포수 포지션의 특성상 반등이 쉽지 않을 거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강민호는 예상을 깼다. 9일까지 46경기에 출전해 타율 0.351(154타수 54안타)을 기록했다. 독보적인 타격감으로 4할대 타율을 유지 중인 강백호(KT)에 이은 타격 2위. 출루율(0.401)과 장타율(0.519)을 합한 OPS도 0.920로 높다. 그가 5할대 장타율과 4할대 출루율을 넘긴 건 롯데 시절인 2016년이 마지막. 삼성 유니폼을 입은 뒤 가장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수비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도 크다. 젊은 투수들의 멘토를 자처한다. 삼성의 토종 에이스 원태인은 지난 6일 시즌 7승을 달성한 뒤 "강민호 선배를 만난 건 큰 행운"이라고 말했다. 강민호는 지난달 27일 창원 NC전에서 부진했던 원태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에 따르면 '연봉에 비하면 넌 엄청난 성적을 내는 거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서 부담이 있을 텐데 편안하게 던져보자'고 다독였다.
공교롭게도 원태인은 다음 등판에서 승리했다. 지난 4일에는 롯데 후배 박세웅에게 메시지도 받았다. 박세웅은 그날 수원 KT전에서 9이닝 3피안타 무실점 완봉승으로 시즌 3승째를 따낸 뒤 강민호에게 '형 덕분에 잘됐다'며 감사함을 전했다.
강민호는 "롯데 주전 포수가 됐다고 생각한 2013년과 2014년 성적이 크게 하락했다. 뭔가 됐다고 생각하는 순간 고꾸라졌다"며 "어린 나이에 경기 뛸 때는 선배밖에 없었다. 지금은 후배를 데리고 경기해야 하는 입장이다. 야구 인생이 길다는 걸 얘기해주고 싶다. 한순간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올해 못하더라도 내년, 내후년이 있다는 걸 (후배들에게)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철저하게 시즌을 준비했다. 지난 2월 허삼영 삼성 감독은 “강민호는 몸이 매년 좋아지는 것 같다. 아침 6시 반쯤 출근해 7시부터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다. 대단하다"며 "올해가 계약 마지막 해니까 본인이 더 철저하게 준비하지 않을까 한다"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강민호는 '얼리버드'를 자처하며 몸을 만들었고 그 결과 8일 개인 통산 1900번째(역대 21호) 출전 금자탑을 쌓았다.
그는 더 높은 곳을 바라본다. 그는 "몸 관리를 잘해서 박용택(전 LG) 선배의 영광스러운 기록(2236경기 출전)에 도전할 수 있도록 하겠다. 올 시즌을 준비하며 건강하게 3년 정도 더 뛰면 그 기록에 도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마흔 살 가까이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예비 FA라는 걸 고려하면 뼈있는 말이기도 했다.
FA는 흔히 타이밍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계약 직전 개인 성적과 FA 시장 분위기 등이 고르게 맞물려야 빅딜이 가능하다. 이미 강민호는 2013년 11월 롯데와 4년 총액 75억원, 2017년 겨울 삼성과 계약하며 두 번의 '대박'을 쳤다. 모두가 어렵다던 세 번째 FA 계약을 앞둔 강민호가 스스로 타이밍을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