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부터 시행된 개별소비세(이하 개소세) 인하가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정부가 올 하반기에도 개소세를 또 한 번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자동차 업계는 일단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다만 차량 반도체 부족 현상으로 신차 출고가 지연되면서 개소세 인하에 따른 소비 진작 효과는 예년 수준에 못 미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일시적인 경기 부양책으로 사용돼야 할 세금 인하 정책이 너무 오랜 기간 유지되면서 정책 만성화에 따른 효과 저하 우려도 나온다.
3500만원짜리 차 75만원 감면
23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승용차 개소세 30% 인하 정책을 연말까지 연장한다.
기획재정부는 22일 국무회의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개별소비세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내수 활성화 대책의 하나로 나온 이번 개정안은 승용차 개별소비세를 5%에서 3.5%로 인하하는 탄력세율 적용을 연말까지 연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앞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지난 5월 28일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회의에서 “국내 자동차 판매 확대 등 내수 지원을 위해 6월 말 종료 예정인 승용차 개별소비세 인하를 연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개정안에 따라 자동차를 구매하려는 소비자는 개소세 100만원, 교육세 30만원, 부가가치세 13만원 등 최대 143만원의 세금 인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출고가격 3500만원 중형 승용차를 기준으로 개소세와 교육세, 부가가치세를 포함해 총 75만원의 세금 인하 효과를 볼 수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개소세 인하 연장으로 하반기 자동차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라며 “승용차 판매가 많이 늘어나 하반기 경기 회복을 위한 내수진작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2015년 이후 개별소비세 30% 인하 기간 중 월평균 승용차 판매량은 14만대로, 인하를 적용하지 않았던 기간보다 8.5% 증가했다
업계 '연장 환영'…효과는 미지수
개소세 인하 소식에 국산차와 수입차를 포함한 자동차 업계는 내수 소비 촉진에 기대감을 나타냈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소비 심리가 위축되는 상황에서 개소세 인하 연장은 반가운 소식”이라면서 “개소세 인하 연장 정책이 자동차 판매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만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 여파로 개소세 혜택 효과가 발생할지 미지수다. 오히려 긴급하게 필요한 반도체 물량을 가격을 높여서라도 구매하면 직접적인 비용 상승으로 이어지는 불상사까지 예상된다.
현대차는 아산공장에서 올해 4월 두 차례에 걸쳐 4일간 가동을 중단했고, 이달 들어 울산·아산공장에서 4차례 휴업을 했다. 기아도 반도체 수급난 이후 처음으로 광명 공장에서 한 차례 가동을 중단했고, 지난달 28일까지 미국 조지아 공장도 휴업했다. 일부 공장 생산을 재개했지만, 차량 반도체 공급 안정화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 생산 원가에서 차량용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미비하지만, 차량 반도체 수급이 불안정하면 원가 상승으로 인한 실적 악화는 불가피할 것이다"고 말했다.
개소세 인하 연장에 따른 세수 감소도 무시할 수 없다. 정부가 승용차 개소세로 거둬들이는 세수는 연간 1조원 안팎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개소세를 인하하지 않은 2017년 자동차 개소세 수입은 1조188억원이었는데, 개소세 인하가 적용된 2019년에는 7954억원이었다. 여기에 교육세, 부가가치세도 연동돼 함께 줄어들었다.
구시대적 폐지 목소리도
내수 활성화를 위한 한시 조치지만 거듭된 연장을 통해 수년째 이어지면서 세금 인하에 따른 차량 판매 효과가 갈수록 둔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소비자들이 반기 혹은 연말마다 개소세 인하 조치가 또 연장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고 신차 구매를 미룰 수 있다는 것이다.
완성차 업계 역시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으로 인해 소비자들이 세금 인하 기간에만 차량을 구매하게 될까 봐 우려하는 눈치다.
실제 지난해 1월 개소세 세율이 5%로 돌아오자 판매가 급감한 바 있다. 세금 인하 정책이 오래 유지될수록 판매 급감 폭은 더욱 커질 것이란 지적이다.
한 완성차 업체 관계자는 "코로나 여파로 소비 심리 위축 가속화가 우려되는 시점에 개소세 인하 기간이 연장돼서 다행”이라면서도 "앞으로는 세금을 온전히 내는 소비자만 바보가 된다는 반응이 벌써 나오고 있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이에 일부에서는 이참에 개소세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자동차 개소세는 사치품에 한해 세금을 거두기 위한 취지로 1977년 제정됐다. 자동차가 필수품이 된 현재 이를 적용하는 것이 합당치 않다는 논리다.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국민 2명 중 1명은 차를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현재 개소세 인하 조치가 구체적으로 어떤 경제적 효과를 가져왔는지 조사하는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조사 결과를 토대로 개소세 인하 연장 여부를 결정지을 전망이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정부가 개소세 인하 정책을 수시로 써먹다 보니 기대했던 효과보다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며 "자동차가 생활필수품 반열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사치품이라는 이유로 세금을 매기는 것이어서 국민 정서에도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임동원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역시 “한시적인 개소세 인하가 끝나더라도 또 인하될 수 있다는 사회인식이 형성된다면 정상적인 소비행위가 일어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나라는 자동차의 취득에 대해 부가가치세 10%에 개소세까지 이중과세하고 있어 세금이 과도하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