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기의 리오넬 메시가 황금빛 드라마를 썼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으로서 여태 메이저 대회 우승을 단 한 차례도 들어 올리지 못했지만, 이번 2021 코파아메리카(남미축구선수권대회)에서 오랜 라이벌 브라질을 상대로 승리하며 국가대표 무관의 불명예를 벗어냈다.
아르헨티나는 11일(한국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이스타지우 두 마라카낭에서 열린 2021 코파아메리카 결승전에서 브라질에 1-0으로 승리했다. 아르헨티나는 전반 22분 터진 앙헬 디 마리아의 선제골을 지키며, 브라질에 한 골도 내주지 않아 극적인 승리를 만들어냈다.
이날 경기는 남미 축구의 영원한 라이벌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이 무려 14년 만에 이 대회 결승전에서 붙는 것으로 큰 화제가 됐다. 2007 코파아메리카에서 브라질은 아르헨티나를 3-0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14년 만의 대결에서의 승자는 아르헨티나의 몫이었다. 1993년을 끝으로 우승을 일궈내지 못했던 아르헨티나는 이날 승리로 코파아메리카에서 15차례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우루과이와 함께 역대 최다 우승 공동 1위에 올랐다.
이번 대회 승리는 대표팀 에이스 메시에게 특히나 뜻깊다. 바르셀로나에서 프리메라리가 우승 10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4회, 코파 델 레이 우승 7회 등 수많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메시다. 하지만 4차례의 월드컵과 5차례의 코파아메리카에 나서 한 번도 우승하지 못하는 등 유독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만큼은 우승과 거리가 멀었다. 2014 브라질 월드컵과 2007, 2015, 2016 코파아메리카에서 결승행에 성공했지만, 번번이 우승 문턱에서 실패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이에 ‘대표팀 준우승’ 징크스와 “대표팀에선 열심히 뛰지 않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그래서인지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이번 코파아메리카에 이를 갈았다. 1987년생, 34세의 높은 연령으로 이번 대회는 메시의 마지막 코파아메리카가 될 확률이 높았다. 그래서 메시는 최선을 다했다. 콜롬비아와의 준결승전에선 부상에도 굴하지 않는 ‘핏빛 투혼’을 펼쳤다. 이날 부상은 브라질과의 결승전까지 이어졌지만, 메시는 끝까지 뛰며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노력은 결과로 다가왔다. 메시는 A매치 151경기에 출장해 76호 골을 성공시켰고, 이번 대회 통산 58호 프리킥 득점을 이뤄내며 기록을 세웠다. 이번 대회 4득점 5도움을 기록하며 득점왕과 도움왕을 차지하고, 결승전 후엔 대회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되며 현역 전설의 위력을 과시했다.
아르헨티나의 우승을 알리는 휘슬이 울리자 전 세계는 메시에 주목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 동료들은 오직 이 순간만을 기다렸을 자신들의 주장에 달려갔다. 메시는 만감이 교차하는 듯,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다 달려오는 동료들을 향해 환히 웃으며 두 팔을 벌렸다. 상대팀 네이마르도 메시에 축하를 건넸다. 메시와 마찬가지로 국대 메이저 대회 우승을 해본 적이 없는 네이마르다. 비슷한 상황이었지만 희비가 갈린 두 사람은 꽤 오랜 시간 포옹하며 남모를 감정을 공유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리오넬 스칼로니 감독은 메시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감독은 메시가 코파아메리카 준결승전 때부터 발목과 햄스트링 부상을 입었고 아직 회복되지 않았지만, 끝까지 경기에 임해줬다며 최고의 선수라고 말했다. 감독은 “오늘 승리는 엄청난 결과물이다. 하지만 우승을 했든 안 했든 메시가 보여준 모든 것은 변하지 않고, 그가 최고라는 사실도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외신도 오랜 시간을 기다린 우승에 환호했다. ESPN은 “오늘 경기는 메시의 첫 국대 메이저 대회 우승이자 아르헨티나의 28년 만 우승으로 아깝지 않은 경기였다”며 이날 아르헨티나의 경기력에 찬사를 보냈다. 대회 초부터 메시의 경기력에 극찬을 보내온 BBC 역시 “메시가 그의 오랜 기다림을 깨면서 최고로서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