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환은 2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대회 남자 기계체조 도마 결선에 출전해 14.783점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차 시기에서 난도 6.0점짜리 ‘요네쿠라’(도마 옆 짚고 공중에서 3바퀴 반 비틀기)를 실시했는데, 착지가 한 발 앞으로 나가면서 14.733점을 받았다. 2차 시기에서는 난도 5.6점짜리 ‘여2’(도마 앞 짚고 공중에서 2바퀴 반 비틀기)를 했다. 뒤로 한 발 물러났지만 비교적 깨끗한 착지를 해서 14.833점을 받았다.
신재환은 데니스 아블랴진(러시아올림픽위원회)와 동점을 이뤘다. 그러나 아블랴진보다 난도 점수가 훨씬 높은 6.0점짜리 기술을 펼친 덕분에 신재환은 금메달을 차지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 도마에서 양학선(29·수원시청)이 처음 금메달을 딴 후, 9년 만에 2번째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북한의 리세광이 가져갔던 도마 왕좌를 다시 한국이 가져왔다.
신재환은 스포츠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택견 선수 출신으로 헬스장을 운영하고 계신다. 신재환은 청주 율량초에 다니던 만 11세에 체조를 시작했는데, 그의 남동생도 따라서 체조에 입문했다. 둘 다 도마가 주 종목이다. 도마는 높이 점프해서 떨어져 착지하기까지 4초밖에 되지 않지만, 3m 가까이를 뛰어올라 떨어질 때 공포는 크다. 화려하게 날아올라 발길질을 하는 택견을 보고 자란 신재환은 공중에 뛰어오르는 걸 두려워한 적이 없다. 오히려 더 높이 뛰어오르고 싶어서 도마 종목을 가장 좋아한다.
남승구 한국체대 교수는 "유연성은 다소 떨어지지만 순발력이 굉장히 좋다. 특히 뛰는 스피드가 남달라서 도약이 굉장히 좋다. 그만큼 더 높이 뛰어올라서 체공시간이 상당하다. 높이 뛰어올랐기 때문에 여유있게 착지하는 장점도 있다"고 전했다. 신재환도 "체력이 좋은 편이다. 지칠 줄 모르는 체력으로 순간 파워를 향상하는 데 주력해서 더 높이 뛸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신재환은 체조를 그만둘 뻔했다. 허리를 많이 비트는 동작을 많이 하다 보니 충북체고 시절 허리가 고장났다. 너무 아파 걷지도 못했다. 병원에 가니 허리 디스크가 터진 상태였다. 결국 철심을 받는 수술을 했고, 의사는 체조를 그만두라고 했다. 신재환은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척추를 고정시키는 속근육을 단련시켜 다시 체조장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힘들게 한국체대에 들어갔지만, 또 허리 디스크가 터지려고 했다. 그런데도 체조를 그만둘 마음이 전혀 없었다. 양태영 한체대 코치는 신재환을 병원에 데려가 하루 8시간씩 허리 근력을 강화시키는 재활을 시켰다. 신재환은 그렇게 통증을 다스렸고, 대학 2학년 때 마침내 꿈에 그리던 국가대표가 됐다. 양 코치는 "재환이가 허리가 너무 아팠기 때문에 최고의 선수가 될 거라고 생각 못했다"면서 "재환이에게 '허리 근력이 떨어지면 체조 인생은 끝이다'라고 했는데, 한 번도 웨이트 트레이닝을 게을리 한 적이 없다"고 전했다.
신재환이 가장 존경하는 선수는 역시 '도마의 신' 양학선이다. 그는 9년 전, 양학선이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걸 보면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겠다'는 꿈을 키웠다. 이번에는 같이 올림픽에 나가게 돼 감격스러워했다. 그런데 양학선이 예선에서 9위로 탈락했다. 이제 온전히 혼자서 결승의 중압감을 견뎌야했다. 이광연 제천시청 감독은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서 결승에 혼자 나가는게 많이 긴장된다고 했는데, 결승 전날에는 많이 편안한 목소리였다"고 전했다.
그런데 신재환은 1차 시기 출발선에 서서 눈을 수차례 깜빡였다. 스스로 긴장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무난하게 뛰고 나서는 표정이 많이 밝아졌다. 그리고 2차 시기에선 더욱 깔끔한 착지를 하고 두 팔을 올려 기뻐했다. 양학선과 함께 경기에 나오지는 못했지만, 그 앞에서 새로운 도마 왕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