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같은 방에서 눈뜰 때마다 ‘꼭 함께 포디움(시상대)에 오르자’고 약속했는데…. 하지만 형도 한국 근대 5종 역사에 한 페이지를 썼잖아요. 우리 둘 다 승자예요.”(전웅태)
도쿄 올림픽 한국 근대5종 국가대표 정진화(32)와 전웅태(26)가 주고받은 대화다.
지난 7일 일본 도쿄스타디움에서 열린 근대5종 레이저 런(육상+사격)에서 전웅태가 3위, 정진화는 4위로 들어왔다. 전웅태 뒤에서 달린 정진화는 결승선을 통과한 뒤 한참 동안 후배를 껴안고 눈물을 쏟았다. 그 순간만큼은 경쟁자가 아닌 동반자였다. 올림픽 창시자 쿠베르탱이 만든 ‘가장 올림픽다운 경기’에서, 둘은 ‘가장 올림픽다운 모습’을 보여줬다.
근대5종은 한 선수가 하루에 펜싱, 수영, 승마, 육상, 사격 등 5개 종목을 모두 해내는 종목이다. 둘은 경북 문경 국군체육부대에서 새벽 5시45분부터 밤 9시까지 하루 15시간 훈련을 함께 해왔다. 두 선수는 서로를 “운동에 미친 좀비”라고 부른다.
그런 노력은 놀라운 성과로 이어졌다. 그리고 국민의 관심으로 이어졌다. 도쿄올림픽을 본 이들은 “근대5종이 이렇게 재미있는 종목인 줄 몰랐다” “두 선수는 ‘근본 종목’의 ‘근본 선수’”라는 찬사를 쏟아냈다. 전웅태는 8일 중앙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그런 얘기를 꼭 듣고 싶었다. 경기 후 도핑 검사를 마치고 어젯밤 11시쯤 들어왔다. 체중이 2㎏ 정도 빠졌고, 종아리가 찢어질 듯 아파서 잠을 제대로 못 잤다. 불을 끄고 누웠는데 둘 다 ‘훌쩍훌쩍’ 했다. 서로 짠해서. 축하 메시지를 공유하면서 행복한 밤을 보냈다”고 말했다.
전웅태는 지난해 예능 프로그램 ‘무엇이든 물어보살’에 출연해 “사람들이 근대 5종을 잘 모른다”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진행자 서장훈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게 답”이라고 말했다. 전웅태는 한국 근대5종 57년 역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따내며, 대한민국에 자신의 종목을 확실히 알렸다.
근대5종은 전쟁에서 유래한 종목이다. 검으로 찌르고, 헤엄치고, 말을 타고, 달리면서 총을 쏜다. 특히 적의 말을 빼앗는다는 의미로, 승마는 경기 당일에 ‘복불복’으로 말을 추첨해 배정한다. 여자부 아니카 슐로이(독일)는 말이 장애물 넘기를 거부해 0점에 그쳤다. 이번 승마에서 장애물을 하나만 떨어뜨린 전웅태는 “앞서 과테말라 선수가 나와 같은 말을 타다가 낙마했다. 그 장면을 보고 일본인 마주가 울더라. 도리어 제가 ‘걱정 마. 말 멋지게 타는 모습 보여줄게’라고 말해줬다. 선수들끼리 우리 종목을 ‘근대6종’이라 부르는데, 한 종목은 행운이다. 난 ‘될놈될(될 사람은 된다)’이었다”라며 웃었다.
수영 선수였던 전웅태는 중학생 때 근대5종으로 전향했다. 고등학생 때 말발굽에 밟혀 뼈가 부러졌다. 그의 왼팔에는 20㎝의 수술 자국이 있다. 전웅태는 “근대5종에서는 낙마해 생긴 상처를 ‘훈장’이라 부른다. 상처가 전혀 부끄럽지 않다”고 했다.
아이돌 같은 외모의 전웅태를 두고 “실력이 뛰어난데 얼굴까지 잘생겼다”는 반응도 나왔다. 하루 사이 전웅태 인스타그램 팔로어가 폭증했다. 전웅태는 “잘생겼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 좋다. 하지만 인기는 외모가 아니라 실력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8일 폐회식에서 한국 선수단 기수로 나섰다.
3년 뒤 파리올림픽 때 전웅태는 29세가 된다. 근대5종은 연륜이 쌓이면 더 잘할 수 있는 종목이다. 전웅태는 “이번에 펜싱 랭킹 라운드에서 21승을 거뒀다. 파리 대회에서는 더 많은 승수를 따겠다. 승마와 레이저 런에서도 더 나은 경기력을 보여 드리겠다”고 다짐했다.
전웅태는 2016 리우 올림픽에서 19위에 그친 뒤 “아메리카노 3샷처럼 쓴맛을 봤다”고 했다. 그는 “도쿄에서는 눈물이 좀 들어간 달콤한 바닐라 라테였다. 파리에서는 은이나 금메달을 따고 음료수 대신 생일 케이크를 받고 싶다. 다시 태어났다는 의미로”라며 “2~3주간 탄수화물을 거의 못 먹었다. 귀국하면 짜장면을 먹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