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은 초라했고, 과정은 조금도 박수를 받지 못했다. 2020 도쿄올림픽 야구대표팀의 현주소다.
한국 야구 대표팀은 지난 7일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도미니카공화국과의 도쿄올림픽 야구 동메달 결정전에서 6-10으로 졌다.
굴욕이었다. 올림픽 '디펜딩 챔피언'으로 참가했지만 '노메달'로 레이스를 마쳤다. 6개 팀만 참가해 한국의 메달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컸다. '아시아 라이벌' 대만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해 대회 출전을 포기했고 '아마 최강' 쿠바는 미주 예선에서 탈락해 도쿄행 비행기를 타지 못했다.
그런데도 한국 야구는 4위에 그쳤다. '숙적' 일본이 5전 전승으로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어 대표팀이 받아든 성적표가 더 초라했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3승 4패를 기록했다. 4일 열린 일본과의 승자 준결승전에서 2-5로 패했고, 이튿날 치른 미국과의 2차(패자) 준결승전에서도 2-7로 완패했다. 도미니카전까지 3연패를 당하며 빈손으로 귀국길에 오르게 됐다.
야구팬은 결과보다 과정에 더 분노하고 있다. 대표팀은 선수 선발부터 논란을 자초했다. 김경문 야구 대표팀 감독과 기술위원회는 내야수 박민우(NC)와 투수 한현희(키움)가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위반한 사실이 드러나 태극마크를 반납하자, 김진욱(롯데)과 오승환(삼성)을 대체 선수로 발탁했다. '신인' 김진욱은 국제무대에서 검증되지 않은 기량이, 오승환은 과거 도박으로 징계받은 전력이 도마 위에 올랐다.
두 선수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 김진욱은 패전조 임무만 맡았다. 오승환은 동메달 결정전에서 6-5로 앞선 8회 초 등판했지만, 1이닝도 막지 못하고 4피안타(1피홈런) 5실점 하며 역전 빌미를 제공했다.
김경문 감독의 투수 교체 타이밍도 납득하기 어려웠다. 4일 일본전 8회 초에서는 멘털이 흔들린 고우석(LG)을 고수하다가 대량 실점을 자초했다. 고우석은 8회 초 1사 1루에서 실책성 베이스커버로 출루를 내준 뒤 폭투와 볼넷까지 허용한 상태였다. 결국 만루에서 야마다 테츠토에게 3타점 좌전 안타를 맞았다. 김경문 감독은 경기 뒤 "내일(패자 준결승) 경기도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고우석이 이닝을 마무리하는 게 이상적이었다"라고 했다. 야구팬은 더 큰 비난을 쏟아냈다.
5일 미국전에서는 1-2, 1점 뒤진 6회 말 1사 1루에서 구원 등판이 익숙하지 않은 원태인을 투입했다. 제구 난조가 확연히 드러났지만, 그가 안타 2개를 허용한 뒤에도 한 타자를 더 맡겼다. 원태인이 볼넷을 내준 뒤에는 조상우를 투입했다. 조상우는 한국이 치른 앞선 5경기 중 4경기에 등판해 공 90개를 던졌다. 어깨가 무뎌진 투수를 굳이 내세웠다. 조상우는 안타 2개를 허용했다. 한국은 미국전 6회 수비에서만 5점을 내줬다.
공격력도 형편없었다. 11-1 콜드게임으로 승리한 2일 이스라엘전을 제외하면 경기당 득점이 3.67점에 불과했다. 양의지(NC)·오재일(삼성) 등 KBO리그에서 고액 몸값을 받는 선수들이 어처구니없는 스윙을 연발한 탓에 야구팬의 화는 더욱 커졌다. 일본·미국전에서는 승기를 잡을 수 있었던 1회 득점 기회에서 후속타 불발로 무득점에 그쳤다.
여기에 벤치는 경험이 많은 선수만 맹신했다. 김경문 감독은 대회를 앞두고 "현재 컨디션이 가장 좋은 선수를 기용한다"라고 했다. 그러나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동메달 결정전 인터넷 중계 응원 창에는 도미니카공화국을 응원하며 대표팀의 ‘노메달’을 기원하는 팬들의 냉소적인 반응이 주를 이뤘다. 병역 미필자를 대상으로 ‘군대 가자’는 조롱까지 나왔다.
도쿄올림픽에서는 수영, 육상, 다이빙, 근대5종 등 한국 스포츠의 불모지에서 묵묵하게 땀을 흘려왔던 선수들이 의미 있는 기록을 냈다. 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 큰 응원을 받았다. 반면 야구는 고액 연봉을 받으며 늘 팬들의 응원을 받는 프로 선수들로 이뤄졌는데, 기대 이하의 성적을 내서 대비를 이뤘다.
한국 야구는 도쿄올림픽을 통해 빈약한 선발, 폭발력과 짜임새가 없는 타선 등 처참한 국제 경쟁력의 현주소를 확인했다. 문제는 이렇게 민낯을 드러낸 게 향후 프로야구에도 적잖은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점이다. 선수들의 거듭된 일탈로 커진 야구팬의 피로감은 올림픽 참사로 더 증폭됐다. 한국 야구가 출범 최대 위기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