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주인공의 판도가 바뀌고 있다. 비주류로 변두리 생활을 하던 인물들이 점차 중심인물로 고개를 드는 중이다.
영국 BBC는 10일(한국시간) 장애인 주인공의 등장과 변화에 관한 기사를 보도했다. 그동안 장애인 배역이 비장애인 배역의 변두리에서 잠시 등장해 개그나 오락적 요소만을 높였다면, 이제 그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영화의 내용을 이끌게 됐다는 것이다.
지난 6월 개봉해 지금까지 인기리에 상영 중인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2’에는 여태 보지 못한 새로운 부류의 영웅이 나온다. 청각을 예민하게 활용해 괴생명체의 공격에서 도망쳐야 하는 영화 속 배경에서 아주 취약한 인물 유형인 청각장애인 ‘레건’(밀리센트 시몬스)이 그 주인공이다.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해 순식간에 등장하는 괴생명체의 늪에서 청각장애인인 ‘레건’은 누군가의 도움이 없다면 죽음을 직면하기 쉬운 약한 존재다. 그렇기에 시즌 1에서 ‘레건’은 아버지의 도움 속에서 자신의 실수로 막내를 잃었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한편, 가정을 지키는 맏딸로 성장해나간다. 이후 시즌 2에서 더욱 성장한 그는 죽은 아버지를 대신해 가정을 지키고 괴생명체에 맞서는 영웅으로 발돋움한다.
‘콰이어트 플레이스2’ 뿐만이 아니다. 비주류였던 장애인들이 주류, 그중에서도 한 뼘 더 성장하는 영화가 속속들이 등장하는 추세다. 배우 마동석의 캐스팅으로 화제가 된 영화 ‘이터널스’도 마찬가지다. 오는 11월 개봉 예정인 영화는 그동안 마블의 중심 시리즈였던 ‘어벤저스’가 ‘엔드게임’으로 막을 내리고 관객에 익숙했던 히어로들이 은퇴한 이후를 그린다. ‘이터널스’에서는 빌런 ‘데비안츠’에 맞서 싸울 새로운 히어로들이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화제를 모으는 이는 ‘마카리’다.
‘마카리’는 히어로물 영화에서 최초로 선보여지는 청각장애인 영웅이다. 수어를 통해 소통하는 ‘마카리’는 원작 코믹에서는 백인 남성으로 그려졌지만, 영화에선 갈색 피부의 여성 배우인 로렌 리들로프가 맡는다.
비장애인 영웅들의 등장은 영화계에서 뜻 깊다. 전형적인 히어로가 아닌 새로운 유형으로 인물의 지평을 넓혔다는 점이 영화사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이다. 또 실제 장애인 배우를 섭외해 이들에 주인공 배역을 맡김으로써 배우를 꿈꾸는 장애인들에게 희망과 꿈을 안겨줬다는 점도 긍정적 요인이다. ‘콰이어트 플레이스’ 시리즈의 밀리센트 시몬스(레건 역)와 ‘이터널스’의 로렌 리들로프의 등장은 그렇기에 더 큰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장애인을 변두리에서 중심으로 영화가 옮기는 것에는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BBC는 청각장애인이 히어로로 영화 중심에 서게 된 일은 기쁜 일이지만, 현존하는 청각장애인이 영화에 접근하는 방법에 대해선 영화사가 아직까지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영화 속 배역의 중심화도 중요하지만, 현실에 존재하는 장애인들이 영화에 더 쉽게 접근하는 것에 대한 고민도 필요함을 꼬집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