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통신 3사가 지난해 업계 추산 700억원대에 불과한 규모의 전자인증 시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비대면 추세에 맞춘 온라인 접근성 강화가 목적이라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진짜 돈'이 되는 금융 서비스와의 시너지를 노린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 31일 업계에 따르면 SK텔레콤은 경쟁사 중 가장 적극적으로 본인인증 앱 '패스(PASS)'의 금융 연계 기능을 확장하고 있다.
패스는 이통 3사가 함께 만든 공동 브랜드이지만, 앱의 기획과 운영은 각 사가 자체적으로 수행한다. 통신사별로 패스가 제공하는 서비스가 상이한 이유다.
SK텔레콤은 유일하게 '패스 머니' '패스 페이' 서비스를 올해 1월부터 운영 중이다.
패스 머니는 인증과 서비스 가입 등으로 적립할 수 있는 포인트다. 본인 명의의 은행 계좌로 이체할 수 있다.
패스 페이는 010페이와 제휴해 세틀뱅크가 제공하는 간편결제 서비스다. 현재 골프 장비를 구매할 수 있는 골프 쇼핑몰 '골핑'과 이비카드 교통 충전에 쓸 수 있으며, 가맹점은 점차 늘려나갈 계획이다.
네이버와 카카오가 선점한 온·오프라인 간편결제 시장에 발을 들인 것이다.
또 KT와 LG유플러스에는 없는 '신용지키미'를 도입했다. 금융 앱 토스처럼 자신의 신용 등급을 확인한 뒤 이에 맞는 대출 한도와 중금리 상품을 소개받을 수 있다. 추천 신용카드를 발급하면 10만원 이상 지원금을 주는 프로모션도 있다.
SK텔레콤은 패스의 이런 신규 기능에 대해 별도로 홍보하지 않는 등 신중한 모습이다.
업계 관계자는 "본인인증을 넘어 금융 플랫폼으로 진화하는 방향성을 잡은 것 같다"며 "수수료 기반의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고민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인터넷전문은행 케이뱅크를 보유한 KT도 패스에서 가능성을 보고 있다. 조만간 금융 연계 서비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KT 관계자는 "기존 업무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전환하고, 금융 서비스 수요가 계속 높아지는 상황"이라며 "가입 편의성과 강력한 보안, 온·오프라인 고객 채널을 보유한 것이 경쟁력이다"고 말했다.
전자인증 시장 초기에는 네이버와 카카오 양대 포털이 이통 3사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세청 홈택스·정부24 등 공공 사이트 간편 로그인을 시작으로 코로나19 백신 예약, QR체크인 등 편의 기능을 앞세웠다. 카카오 인증서 이용자는 2000만명을 넘어섰다.
그러다 패스가 작년 6월 편의점에서 주류를 구매할 때 신분증 대신 성인임을 증명할 수 있는 '모바일 운전면허 확인 서비스'를 내놓으며 호응을 얻었다. 지난달 가입자가 3500만명을 돌파했다.
패스는 포털 인증 앱보다 확장성이 무한하다. 이통 3사가 '본인인증'은 물론 포털에 없는 '본인확인'까지 뒷받침하는 본인확인기관이기 때문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2013년 휴대전화번호를 주민등록번호 대체 수단으로 지정한 바 있다.
본인인증은 자신이 한 행위에 대해 전자서명으로 확인하는 것이라면, 본인확인은 나 자신임을 증명하는 한 단계 높은 보안 행위다.
예를 들어 은행에서 처음 계좌를 등록할 때는 본인확인을 필히 거쳐야 하지만, 그다음부터는 앱으로 본인인증을 해 빠르게 송금 등을 할 수 있다.
올해 초 네이버와 카카오는 본인확인기관 등록 신청을 했지만, 이용자 동일성 여부를 제대로 식별할 수 없다는 이유로 떨어졌다.
토스가 지난달 25일 12가지 개선 조건 아래 신규 편입했지만, 국민 대다수의 정보를 보유한 이통 3사에 대적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처럼 신분증 없이 온라인에서 금융과 엮을 수 있는 유일한 플랫폼으로 진화하면서 패스가 이통 3사의 새로운 먹거리로 부상했다.
본인확인 대행으로 건당 수수료를 가져가는 것을 넘어 여러 금융사와 제휴 프로모션을 기획해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선순환 체계를 만들 계획이다.
김두현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전 국민을 잠재고객으로 삼는 비즈니스이기 때문에 사업모델 확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며 "전자인증 시장 선점을 위한 민간사업자들의 경쟁적 유입 기조는 향후에도 지속할 전망이다"고 내다봤다.
정길준 기자 jeong.kiljh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