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 상황 속 올여름 극장가가 참패를 면할 수 있었던 것은 ‘구원투수’로 등판한 한국 영화들 덕분이다.
7~8월 개봉작인 류승완 감독의 ‘모가디슈’와 황정민 주연의 ‘인질’은 제작사 외유내강의 작품으로 3주 간격으로 잇따라 개봉했다. ‘모가디슈’는 300만, ‘인질’은 100만의 누적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하지만 개봉 전까지만 해도 제작사는 노심초사해야 했다.
남편 류승완 감독과 영화제작사 외유내강을 17년째 이끄는 강혜정 대표는 “이걸 흥행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억울해요”라며 기쁘면서도 아쉬운 비명을 질렀다.
‘모가디슈’는 마블의 ‘블랙위도우’를 제치고 올해 개봉한 최고 흥행 기록을 세웠다. ‘인질’ 역시 올해 박스오피스 8위에 올랐지만, 하루에도 작품 한 편에 관객이 100만명씩 몰리며 ‘천만 관객’ 영화가 탄생하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이전 시절과 비교하면 초라한 성적이기 때문이다
강 대표는 “영화가 대작이든 소작이든 코로나가 진정되면 개봉하자는 것이 제작사 대부분의 생각일 것”이라며 “나 역시 두 작품이 코로나와 맞서 싸우는 영화가 되리라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수도권에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이렇게 오래 유지될 줄 알았으면 못 했을 것”이라고 솔직한 심정을 밝혔다.
이어 “영화가 제작된 뒤 기다린 시간도 있고, 배급사들도 작품에 대한 자신감으로 여름 시즌 개봉을 원했다. 더 미루는 것이 효과적인지에 대한 고민 끝에 결정했다”며 “다행히 두 작품의 장르적 성격이 달라 충돌하는 것은 아니어서 연달아 개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두 영화의 손익분기점은 ‘모가디슈’ 350만명, ‘인질’ 170∼180만명선이다. 9월 추석 연휴까지 장기 흥행이 이어진다면 손해는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제작비 200억대 규모의 ‘모가디슈’는 한국상영관협회가 제작비 절반 회수를 보장해주기로 했다.
강 대표는 최근 극장가를 두고 ‘상상할 수 없는 시장’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이런 상황에도 극장을 찾아준 관객들에 대한 감격스러운 마음을 드러냈다. 한국 관객에게는 마음이 힘들 때 한국 영화만이 줄 수 있는 위로가 있는 것 같아 자부심도 들었다고 전했다. 강 대표는 “두 영화를 보러온 관객들을 생각하면 정말로 코끝이 찡해요. (감염 위험에 대한) 마음의 허들을 넘고 용기를 내 극장에 오시는 거잖아요. 개인적으로 참 감격스러운 순간이에요. 흥행에 대한 물리적 아쉬움을 감정적으로 몇 배 이상 보상받은 것 같아요. 성적과 상관없이 관객들과 소통했다는 데 진정한 기쁨이 느껴져요”란다.
그러면서 두 영화의 매력도 자랑했다. ‘모가디슈’는 한국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사건을 잘 담은 영화다. 이런 스케일의 영화를 또 만들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총력을 기울인 작품이라고 했다. ‘인질’은 스릴러 장르의 쾌감에 충실한 영화로 배우 황정민이 가진 매력을 극대화한 몰입감 높은 작품이란 게 강 대표의 설명이다.
애초에 극장 개봉을 생각하고 만든 영화였기에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에 작품을 공개할 생각은 없었다고 했다. 큰 스크린과 전문 사운드가 갖춰진 극장에서 온전하게 영화에만 집중했을 때 나오는 몰입감은 집에서 볼 때와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인질’의 경우 필감성 감독의 데뷔작으로 극장 개봉을 할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고 전했다. 실제 외유내강은 설립 초기에는 류 감독의 작품 위주로 제작을 진행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신인 감독 발굴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장르도 액션에서 코미디 ‘다찌마와리’, 공포 ‘사바하’, 재난 코미디 ‘엑시트’, 로맨스 ‘너의 결혼식’ 등 다양해졌다.
강 대표는 “산전수전 공중전을 겪었다. 더 큰 스케일로 가는 게 아니라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냐가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다”며 “외유내강도 제작사로서 고충의 시간을 보내면서 성장했고, 류 감독에게 의존하던 시스템에서 프로듀서와 신인 감독을 확장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강 대표는 관객들에게 ‘볼만한 영화라는 확신’을 주고 싶다고 했다. 올림픽에 나갈 양궁 국가 대표팀을 선발하기 위한 국내 선발전이 치열한 것처럼 시장에 내놨을 때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고민을 거듭한다고 전했다. 그는 “코로나 이후 사람들의 삶이 많이 달라졌잖아요. 문화가 어떻게 소비될지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해요. 하지만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저는 똑같아요. 내 작품의 허들, 레벨을 높이는 것. ‘그 영화는 꼭 극장에서 봐야 한다’는 확신을 줄 수 있다면, 살아남을 수 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