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29)은 지난 2일 서울에서 열린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 1차전 이라크전에서 슈팅 1개(유효슈팅 0개)에 그쳤다. 한국은 무득점, 무승부에 그쳤다. 손흥민은 불과 사흘 전(지난달 29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왓포드전에서 프리킥 골을 터트렸다. ‘아시아 최종 예선’보다 수준 높은 ‘EPL’에서 어떻게든 골을 넣었다.
‘토트넘 손흥민’과 ‘축구대표팀 손흥민’은 극명하게 다르다. 파울루 벤투(포르투갈) 감독이 한국을 맡은 2018년 8월 이후 손흥민은 대표팀에서 4골(22경기)에 그쳤다. 마지막 필드 골은 23개월 전인 2019년 10월 약체 스리랑카전(2골) 때 터졌다. 가장 최근 득점은 6월 레바논과 2차 예선 페널티킥이었다. 토트넘에서는 ‘월드클래스’인데, 왜 대표팀에서 득점포가 잠잠할까.
딕 아드보카트 이라크 감독은 손흥민에게 ‘그림자 수비’를 붙였다. 손흥민은 장거리 이동과 시차 적응 탓에 컨디션이 좋을 리 없었다. 런던에서 서울까지 11시간, 8860㎞를 날아왔다. 50시간 만에 경기에 나서 풀타임을 뛰었다. EPL에서 주저 없이 슛을 때리는 손흥민은 이라크전 후반 21분 찬스에서 패스를 내줬다. 직접 해결하기보다 찬스를 만들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손흥민은 2019년 tvN ‘손세이셔널’에서 “국가대표는 명예롭지만 한편으로는 책임감이 있어야 하는 자리다. 소속팀에서는 진짜 마음 편하게 한다. 주위를 보지도 않고 슛을 때린다. 하지만 대표팀에만 오면 막상 슛할 생각을…. 찬스가 생겨도 옆을 보고, 공을 패스해주는 상황이 되게 많았다”고 고백했다. 주장으로서 책임감과 부담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손흥민은 2018년 주장 완장을 차기 전에는 23골을 뽑아냈다.
전술적인 이유도 있다. 토트넘에서는 해리 케인 등에 상대 수비가 분산된다. 반면 아시아 국가들은 ‘에이스’ 손흥민을 전담 마크하고 수비를 끌어내려 뒷공간을 내주지 않는다.
한준희 해설위원은 “리오넬 메시가 있다고 아르헨티나가 남미 예선에서 쉽게 이길 수 없듯, 손흥민 한 명 있다고 아시아 국가를 쉽사리 이길 수 없다. 축구는 조직력과 밸런스가 중요한 단체 종목”이라며 “벤투 감독이 손흥민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보다 팀 전체의 공격 방식을 어떻게 만드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은 수비부터 공격을 전개하는 빌드업 템포가 너무 느리고, 공격 루트도 단조롭다. 상대 수비를 쏠리게 한 상황에서 기습적인 전환 플레이가 잘 이뤄진다면, 그 안에서 손흥민도 풀릴 것”이라고 했다.
손흥민은 5일 화상 인터뷰에서 “토트넘에서도, 대표팀에서도 밀집 수비하는 팀에 고전하는 면이 있다. (대표팀에서 슈팅을 아낀다는 지적에 대해) 저도 진짜 해결하고 싶고 책임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제가 슈팅을 때릴 찬스가 없었던 것 같다. 안 때리려고 안 때리는 건 아니다. 수비가 타이트하거나 슈팅 자세가 나오지 않을 땐 패스하는 게 욕심을 안 부리는 것”이라며 “팀이 승리하려면 골을 넣어야 한다. 자신 있는 슈팅을 더 때리겠다. 고쳐 나가는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했다.
이라크의 시간 지연을 비판했던 손흥민은 “경기 시작과 동시에 시간을 끌고, 그걸 제재하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했다. 축구를 보는 게 재미있지, 시간을 끄는 게 재미있는 건 아니지 않나. 한국 감독을 하셨던 분(아드보카트)이 ‘근거 없는 발언’이라고 하셨는데, ‘나랑 혹시 다른 경기를 본 건가?’ 이런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한국은 7일 오후 8시 수원에서 2차전을 치른다. 상대는 ‘침대 축구(시간을 끌기 위해 드러눕는)’로 악명 높은 레바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