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수영하고, 펜싱하고, 잠깐 낮잠 자다가 나왔는데 죽겠네요. 10년을 넘게 해오는데도 새로워요.”
14일 광주월드컵경기장에서 만난 전웅태(26)가 졸린 눈을 비비며 말했다. 지난달 끝난 도쿄올림픽에서 한국 근대5종 역사상 첫 올림픽 메달(동)을 딴 그가 훈련을 재개한 첫날이었다. 근대 5종은 펜싱·수영·승마·레이저 런(육상+사격) 등 5종목을 모두 해야 해서 ‘좀비 훈련’이라 불린다. 그는 “부상 당했을 때를 빼면 이렇게 오래 쉬어본 적이 없다. 먹고 싶던 짜장면도 먹어서 몸무게가 2~3㎏ 늘었다. 진짜 좋은 꿈을 꾼 느낌이다. 너무나 행복한 한 달이었다”고 했다.
도쿄올림픽을 덕분에 그의 실력은 물론 아이돌 같은 외모도 화제가 됐다. 전웅태는 “여성 팬이 건넨 종이에 무심코 사인을 해드렸는데, 알고 보니 혼인신고서여서 깜짝 놀랐다”며 웃었다.
귀국 후 전웅태는 ‘무엇이든 물어보살’, ‘비디오 스타’, ‘노는 브로’ 등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나 혼자 산다’로부터 섭외를 받았으나, 경기도 일산에서 부모님과 같이 살아서 출연하지 못했다. 전웅태는 “예능에서 만난 산다라 박(가수) 님과 소셜미디어(SNS) 인스타그램 ‘맞팔’을 하게 됐다. 꿈인지 생시인지. 지난해 근대 5종을 알리고 싶어 나갔던 ‘무엇이든 물어보살’에 또 출연했다. ‘다시 마음을 굳건히 다잡고 싶다’는 고민을 들은 서장훈 형님이 ‘지금의 마음가짐을 지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조언해줬다”고 말했다.
지난달 26일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 광주 홈 경기에서는 시구자로 나서 스트라이크를 꽂았다. 전웅태는 “시구는 인싸(인사이더) 중 인싸만 하는 거 아닌가. 당시 야구 유니폼 등 번호 12번을 달았는데 ‘3등(올림픽 동메달)’이 아니라, ‘1등’이나 ‘2등’을 하겠다는 의미”라고 했다. 전웅태는 다음 달 전국체육대회, 내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준비하고 있다. 두 대회 모두 2연패에 도전한다. 아시안게임에선 러시아 귀화 선수, 개최국인 중국 선수 등과 경쟁해야 한다. 전웅태는 “대표팀에 들어가면 알람을 새벽 5시 32분에 다시 맞추고 15시간씩 훈련할 것”이라고 했다.
2024년 파리올림픽에서는 새 규정에 적응해야 한다. 육상 거리가 800m에서 600m로 단축되는 등 체격과 힘이 뛰어난 유럽 선수들에게 유리하도록 룰이 바뀔 예정이다. 유럽에서 태동한 근대 5종은 유럽 세력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전웅태는 “예전에도 유럽에 유리한 환경이었지만, 결국 극복했다. 난 정신력과 깡으로 무장했다”며 “근대 5종 창시자 쿠베르탱이 프랑스인이다. 게다가 근대 5종 승마는 베르사유 궁전 정원에서 열린다. 여기서 대한민국 선수가 메달을 목에 걸면 얼마나 멋지겠는가”라고 했다.
‘올림픽 다른 종목 선수들과 함께 무인도에 떨어진다면 가장 오래 버틸 자신 있나’라고 묻자 전웅태는 “난 동물(말)을 탈 줄 알고, 총과 칼도 쓴다. 헤엄쳐서 강을 건너고, 빠르게 뛸 수도 있다. (헤비급 복서) 마이크 타이슨이 와도 내 적수가 아닐 것”이라며 웃었다.
재치 넘치는 그는 여자배구 대표선수들과도 친해졌다. 전웅태는 SNS에 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며 ‘저 괴롭히는 사람들, 무서운 배구 누나들한테 이를 거에요’라고 글을 남겼다. 그러자 오지영(33·GS칼텍스)은 ‘우리 안 무서워. 너보다 작구먼’이라고 답했다. 이소영(27·KGC인삼공사)은 ‘다 말해요. 혼내줄게요’란 댓글을 달았다. 전웅태는 “배구장에 불러주면 가서 ‘승리의 요정’이 되겠다”며 웃었다.
올림픽 후 그는 소개팅 제의를 많이 받았단다. 그의 이상형은 누굴까. 전웅태는 “청순한 가수 아이유씨를 좋아한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계속 큰 사랑을 받고 있다”고 했다.
지난달 10일 방송인 김어준씨는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전웅태와 전화 인터뷰하며 “근대 5종이 중학생 운동회 느낌”이라고 무례하게 말해 논란이 됐다. 전웅태는 “처음에는 ‘이 분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대 5종에 대해 잘 모르시는 것 같아서 차분차분 말씀드렸다. 방송 후 선생님들과 선수들이 전화를 걸어와 ‘웅태야 괜찮아?’ ‘막말한 거 아니야?’ ‘너무 열 받는다’며 걱정했다. 아버지는 ‘원래 방송 콘셉트가 툭툭 던지는 것’이라고 말씀해주셨다”고 했다.
그래도 그는 “방송하는 날 나도, 근대 5종도 빵 떠서 좋았다. 오히려 근대 5종을 더 알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원래 그렇게 긍정적인가’라고 묻자 전웅태는 “늘 좋은 마음을 갖고 살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종목은 힘들어서 할 수가 없다”며 해맑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