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진구, 김유정 등은 잘 자란 ‘아역 배우’ 출신의 성인 연기자다. 이들은 2012년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 김수현과 한가인의 아역으로 출연해 드라마의 신드롬을 일으키는데 큰 공을 세웠다. 이처럼 과거 아역이란 단순히 어린 배우들을 일컫는 말로도 쓰였지만, 성인 배역들의 어린 시절로 등장해 인물들의 서사를 탄탄히 하는 역할을 의미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안방극장에서는 좀처럼 아역들의 서사를 찾아보기 어려워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드라마 분량이 점차 짧아지고 강렬함을 추구하는 장르극이 많이 등장하는 최근 추세와 미성년자 보호를 위한 규제를 원인으로 꼽았다. 이어 아역 서사가 극에 있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전했다.
최근 드라마에 등장한 아역들을 살펴보면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리즈의 이우주(김준 분), ‘오케이 광자매’의 오뚜기(홍제이), ‘하이클래스’의 황재인(박소이 분), 안이찬(장선율 분) 등 주인공의 자녀로 등장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대다수다. 하지만 과거 드라마에서는 통상적으로 초반 4회는 주인공들의 어린 시절을 그리며 인물 관계도의 포석을 깔아왔다. 대표적으로 ‘천국의 계단’ 속 한정서(최지우 분), 차송주(권상우 분), 한태화(신현준 분)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박신혜, 백성현, 이완과 앞서 언급한 ‘해를 품은 달’ 등이 있다.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는 “요즘 대부분의 드라마는 16회로 이뤄져서 주인공들을 빨리 등장시켜 초반부터 시청률을 끌고 갈 필요성이 있다”면서 “처음부터 중요한 사건이 터져야 하는 구조 속에서는 아역 서사가 끼어들 틈이 별로 없다”고 분석했다. 이어 “또 OTT의 등장으로 제작 환경이 변화하면서 아역으로 캐릭터를 설명하는 작법이 필요한 것이 아니면 쓰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역 서사의 축소에는 미성년자를 보호하기 위한 방송 규제의 영향도 있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52시간 노동이라든지 장르극의 경우에는 아역의 보호를 위한 심리치료 등 조치들이 늘어나면서 아역의 비중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현실이 있다”면서 “이러한 조치들은 어린 배우들이 좀 더 안전한 환경에서 연기하기 위해 필요하지만 아역의 비중이 줄어드는 데에도 한몫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5월 종영한 드라마 ‘마우스’의 경우, 첫 회에 배우 김강훈이 사이코패스의 어린 시절로 등장해 잔인한 장면들을 연기하자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러한 논란을 피하고자 아역의 비중 자체를 줄이기도 한다. 하지만 아역 서사의 축소로 드라마의 재미가 되려 감소한다는 지적도 있다.
과거 아역들이 초반 극의 전개를 풀어나가면서 캐릭터가 좀 더 명확하게 구축되고 이는 자연스레 시청자들의 몰입도를 높여왔다. 또 이들은 이후에 전개되는 사건의 실마리나 반전을 암시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 모든 것이 성인 연기자의 몫이 됐다. 이에 드라마의 전개가 다소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고, 숨어 있는 반전을 잡는 재미가 줄어들 수 있다. 또 다양한 연령대의 배우가 등장하기 위한 균형적 차원에서도 아역의 서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있다.
공희정 평론가는 “미성년자 보호를 위해 아역의 비중을 줄이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비판하며 “아역의 비중을 다른 방식으로 펼칠 방안을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