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보다 잘하는 거요? 힘 빼고는 제가 다 낫죠.” (이원석) “허허. 조만간 그렇게 되겠지. 그런데 아들아, 아직은 멀었다.” (이창수)
전 농구 국가대표 센터 이창수(52) KBL(한국프로농구연맹) 전력분석관과 아들 이원석(21·서울 삼성)은 서로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동안 ‘농구 부자’로 불렸던 두 사람은 28일 ‘프로농구 부자’가 됐다. 연세대 2학년 센터 이원석이 프로에 입문하면서다.
이원석은 2021 KBL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 지명을 받아 삼성 유니폼을 입었다. 이번 드래프트 참가자 중 최장신(2m7㎝)인 그는 리바운드는 물론 스피드와 슛 능력까지 갖춘 특급 유망주다. 대학 졸업 전이라서 성장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다.
이원석은 아버지와 같은 프로팀에 입단해 더 주목받았다. 이 분석관은 1992년 실업농구 삼성전자에서 시작해 프로농구 삼성을 거쳤다. 삼성에서만 10년을 뛴 성실함의 대명사였다. 이후 울산 현대모비스, 창원 LG를 거친 그는 2008년부터 ‘KBL 최고령 선수’ 타이틀을 달았다. 만 42세였던 2011년 은퇴했다. 태극마크를 달고는 2003년 아시아선수권대회 준우승을 경험했다.
이 분석관은 “나의 첫 팀이었던 삼성 유니폼을 아들도 입길 내심 바랐다. 하지만 1순위여야 가능한 일이라서 기대는 하지 않았다. 인터넷 실시간 중계로 드래프트를 지켜봤는데, 이상민 삼성 감독이 아들 이름을 부르기도 전에 내 휴대폰에 축하 메시지 수십 통이 쏟아졌다. 인터넷 중계와 현장의 시차 탓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현장 관계자들의 축하를 받고 원석이가 뽑힌 걸 알았다. 3~4초 뒤 이 감독이 원석이 이름을 부르는데 나도 모르게 ‘됐어!’라고 소리 질렀다”며 흐뭇해했다. 이원석은 “3순위 지명을 예상했다. 꿈을 꾼 것처럼 얼떨떨하다. 부전자전이라는 말을 듣도록 성실한 자세로 뛰겠다. 아버지보다 딱 1년 더, 43세까지 뛰는 게 목표”라며 웃었다.
이 분석관은 선수 시절 ‘훅 슛(상대 블록 슛을 피해 옆으로 서서 던지는 슛) 장인’으로 통했다. 센터로는 키(1m96㎝)가 큰 편이 아니라서 연마한 기술이었다. 이원석은 아버지의 주 무기를 전수 받았다. 그는 고교 3년 내내 오전 6시에 등교했다. 1교시가 시작하는 오전 8시까지, 두 시간 동안 학교 체육관에서 아버지로부터 ‘과외’를 받았다. 훅 슛, 포스트 플레이 등 센터에게 필요한 기술을 배웠다.
아버지의 가르침은 혹독했다. 실수하면 따끔하게 혼났고, 쓰러지면 곧바로 일으켜 세웠다. 이 분석관은 “내가 내세울 게 훅 슛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걸 가장 공들여 가르쳤다. 아들이 마냥 순둥이인 줄 알았는데, 슛이 잘 안 되면 주말에도 3시간씩 훈련을 자청하더라. 근성을 가진 선수는 성장한다”고 칭찬했다.
이원석은 “‘이창수의 아들’이 못한다는 말은 죽어도 듣기 싫었다. 그래서 이를 악물었다. 지금은 아버지의 훅 슛을 거의 비슷하게 따라 한다”며 어깨를 폈다. 이 분석관은 “아들의 훅 슛이 제법 쓸 만해진 건 맞다. 그래도 아직 걸음마 수준”이라며 웃었다.
이원석에게 ‘아버지의 선수 시절 영상을 본 적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유튜브에 아버지의 경기 영상이 많지 않다. 하이라이트 영상 몇 편이 전부더라. 아버지는 칭찬엔 인색하고, 지적을 많이 하시는 편이다. 가끔은 나도 아버지 경기를 보고 평가하고 싶은데 아쉽다”며 슬쩍 눈치를 봤다. 이 분석관은 “내 영상이 적어서 천만다행”이라며 딴청을 피웠다.
이원석은 아버지의 실력을 두고 농담한 게 미안했는지 “내 롤 모델은 아버지”라고 강조했다. 그러자 이 분석관은 “빈말이다. 원석이는 대학 선배인 (서)장훈이를 보고 컸다. 키와 포지션이 같아서 영상을 많이 찾아보는 것 같다”고 받아쳤다. 그러면서도 “볼을 다루는 센스, 스피드, 슛, 블록 슛 능력은 나를 훨씬 뛰어넘는다.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힘을 보강하면 프로에서 살아남을 것”이라고 격려했다.
2021~22시즌 프로농구는 다음 달 9일 개막한다. 이원석의 올 시즌 목표는 신인왕이다. 그는 “아버지께서 ‘프로는 기다려주지 않는 곳’이라고 항상 강조하셨다. 죽기 살기로 해서 빨리 팀에 녹아들어 최대한 많은 출전 기회를 잡겠다. 그다음엔 신인왕에 도전하겠다. 평생 한 번뿐인 영광스러운 상을 놓치지 않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이어 “아버지로부터 배운 훅 슛의 업그레이드 버전이 거의 완성 단계다. 멋진 훅 슛을 기대해달라. 상은 아버지에게 선물하겠다”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