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에 샛별이 나타났다. 주니어 그랑프리 데뷔전에서 깜짝 은메달을 딴 김채연(15·태랑중)이다.
김채연은 지난 8월 프랑스 쿠르슈벨에서 열린 2021~22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스케이팅 주니어 그랑프리 2차 대회 여자 싱글에서 합계 191.46점으로 2위에 올랐다. 주니어 그랑프리 데뷔 경기에서 메달을 딴 한국 선수는 김연아(2004년), 박연정(2019년)에 이어 김채연이 세 번째다. 주니어 그랑프리 데뷔 경기에서 190점 이상을 기록한 건 한국 여자 싱글 사상 최초다.
과천시민회관 빙상장에서 만난 김채연은 홍조 띤 얼굴에 수줍게 웃는 소녀였다. 키 1m47㎝로 아담한 체구여서 더 그래 보였다. 강렬한 메이크업을 하고 연기할 때와 전혀 달랐다. 그는 작은 목소리로 “성격이 내성적인 편이다. 첫 인터뷰라 긴장된다”며 배시시 웃었다. 이어 “처음 나간 주니어 그랑프리 대회라서 조금 떨렸다. 쇼트와 프리 모두 실수 없이 연기해서 기뻤다. 연습할 때보다 점프가 훨씬 잘됐다”고 했다. 트리플(3회전) 점프 5종(토루프·러츠·살코·플립·루프)과 더블 악셀을 모두 완벽하게 뛰었다.
김채연은 피겨를 11세에 시작했다. 예닐곱 살부터 피겨를 배우는 요즘 추세에 비하면 꽤 늦었다. 그런데 4년 만에 태극마크를 달았다. 김채연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취미로 타다가 5학년 때 본격적으로 개인 강습을 받기 시작했다. 그때도 전문 선수가 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6학년 때 더블 악셀을 뛰면서 국가대표 꿈을 키웠다”고 했다.
김채연을 가르치고 있는 한성미 코치는 “늦게 입문해서 국제대회에 나가 입상한 경우는 채연이가 처음이다. 기초체력이 탄탄해서 빨리 성장했다”고 전했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만큼 악착같이 따라잡았다. 하루 훈련 시간은 총 8시간. 경기도 양평군 집에 가면 밤 11시다. 고된 훈련에도 그는 기초체력의 바탕이 되는 조깅을 빼놓지 않는다. 그는 “타고난 체력이 좋은진 모르겠다. 링크 훈련이 끝나면 꼭 30분씩 조깅을 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피겨 여왕’ 김연아(31·은퇴)와 그는 열여섯 살이나 차이가 난다. 김채연은 “피겨를 제대로 시작한 4년 전에 연아 언니 경기를 동영상으로 봤다”고 했다. 그에겐 너무 먼 존재였다. 대신 김채연이 호감을 가진 선수는 ‘점프 기계’ 네이선 첸(22·미국)이다. 김채연은 “남자 선수 영상을 더 많이 본다. 기술적으로 잘 타는 선수들을 좋아하는데, 네이선 첸 영상을 보며 감탄을 연발한다. 나도 그렇게 점프하고 싶어서 연구한다”고 했다.
점프 이야기가 나오자 얼굴이 다소 상기됐다. 그는 “언젠가는 쿼드러플(4회전) 점프를 꼭 뛰고 싶다”고 했다. 한 코치는 “요즘 고난도 점프 없이는 입상하기 어렵다. 최근 여자 피겨에서 상위권을 휩쓰는 러시아 선수들은 채연이만한 작은 체구로도 고난도 점프를 잘 뛴다. 채연이는 요즘 트리플 악셀(3회전 반) 점프를 연습하고 있다”고 전했다.
여자 선수는 주니어에서 시니어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체형 변화를 경험한다. 이 과정에서 고난도 점프를 연마하다 다치는 경우가 많다. 김채연은 마디게 성장하고 있다. 그는 “1m60㎝까지 컸으면 좋겠다. (지금은) 확 크고 있지 않아서 훈련하기엔 더 좋다. 군것질도 안 해서 체중 변화도 거의 없다”고 했다.
김채연은 2026년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출전을 꿈꾸고 있다. “국가대표만 훈련하는 태릉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것만으로도 두근두근 설렜어요. 그런데 올림픽이라니…. 이젠 꿈꿔도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