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대표팀의 한 후배가 관중석의 날 보더니 농담을 건넸다. 17일 카타르 도하의 타니 빈 자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년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한국이 이라크를 3-0으로 완파한 뒤였다. 무관중 경기였지만, 대한축구협회가 카타르 프로축구 알 코르에서 뛰고 있는 날 초대해줘 멋진 승리를 볼 수 있었다.
난 2019년 1월 태극마크를 반납했다(A매치 76경기 19골). 그해 6월 서울에서 열린 한국-이란전을 바이에른 뮌헨(독일) 아시아 디렉터를 데려가 지켜본 뒤 오랜만에 대표팀 경기를 관전했다.
손흥민(29·토트넘)이 2011년 A매치 데뷔골을 신고한 이 경기장에서 후반 29분 A매치 30번째 골을 넣었다. 돌이켜보니 10년 전 그 골의 어시스트를 내가 했더라.
흥민이가 페널티킥을 차기 전 ‘작은’ 정우영(22·프라이부르크)이 골문으로 먼저 쇄도해 공을 다시 차게 됐다. 후배의 실수에도 흥민이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서로 이해하고 실수한 선수를 보듬는 이런 사소한 모습. ‘벤투호’가 단단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정우영은 페널티킥 미스를 대비해 대시했을 거다. 막내 선수이다 보니 자신의 실수가 팀에 해를 끼쳤다는 자책감에 흔들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다행히 정우영은 후반 34분 흥민이처럼 도하에서 A매치 데뷔골을 넣었다.
전술적으로 핵심 포인트는 ‘포백 라인 컨트롤이 90분 내내 기가 막히게 이뤄졌다’는 거다. 미드필더 ‘큰’ 정우영(32·알 사드)이 밑에서 컨트롤해줬고, 황인범(25·카잔)과 이재성(29·마인츠)이 공격을 전개하며 패스를 찔러줬다. 조규성(23·김천)은 최전방에서 성실하게 움직여 찬스를 만들어주며 100% 아니 300% 역할을 해줬다.
황인범은 이젠 대표팀에서 대체 불가능한 선수가 됐다. 나와 기성용(32·서울) 등이 ‘89(년생) 라인’이라 불렸는데, ‘96(년생) 라인’ 황인범-김민재(페네르바체)-황희찬(울버햄튼)은 황금세대다. 서로 애지중지하더라. 겉멋이 들지 않았고 프로페셔널 하다.
지난 9월 최종예선 1차전 후 파울루 벤투(포르투갈) 대표팀 감독을 교체하자는 목소리가 일부 있었다. 거스 히딩크 감독님 때는 안 그랬나. 기다려 주지 못하고, 결과를 빨리 내주기를 세상은 원하고 있다. 예전에 이청용(33·울산)이 “2014년과 2018년처럼 월드컵 직전에 감독을 교체한다면 실망할 것 같다”고 힘줘 말한 적이 있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내가 본 벤투는 한 마디로 ‘뚝심 있는 감독’이다. 처음에는 방황하는 시간들 있었지만, 오랜 시간을 함께하며 주축 선수들을 가려내고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서로를 위해 한 발 더 뛰려는 모습을 보며 우리 대표팀이 ‘원팀’이 된 걸 느꼈다. 특히 주장 흥민이는 지금처럼만 한다면 아주 좋은 성과를 낼 거다.
아시아 최종예선 조 1·2위가 월드컵 본선에 직행한다. 이란(승점 16)에 이어 한국(4승 2무·승점 14)은 조 2위다. 3위 아랍에미리트(승점 6)와 격차를 8점으로 벌렸다. 우리나라는 이르면 내년 1월 7차전에서 10회 연속 본선행을 확정할 수 있다. 레바논과 원정에서 이기고, 아랍에미리트가 시리아에 비기거나 지면 조 2위를 확보한다. 2014년과 2018년 월드컵 본선행은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결정됐다. 이번처럼 최종예선에서 순항한 대표팀이 없었던 것 같다. 놀라울 따름이다.
이라크전 막바지에 3-0이 되자 예전 생각이 났다. 선수들이 누구보다 기쁘겠지만, 한편으로는 ‘다시 비행기를 타고 돌아가 소속팀에서 경기해야지’란 생각이 들었을 거다. 독일에서 뛸 때 나도 했던 걱정이다. 소속팀과 대표팀을 오가며 경기를 이어가는 게 쉽지 않다. 최선을 다한 후배들에게 박수를 보내주셨으면 좋겠다.